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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규 Jul 13. 2018

[서평] 모든 걸 안다고 자만하게 하는 <지식의 착각>

<지식의 착각> 책리뷰 : 인간은 타인의 앎과 지혜에 빚을 지며 산다

[서평] 뭐든 다 안다고 자만하는 이들이 읽어야 할 인지심리학 책, <지식의 착각>

<지식의 착각> 북리뷰 : 인간은 타인의 앎과 지혜에 빚을 지며 산다


책 표지 (출처 : 세종서적)


인간은 지식노동도 분업한다


이 책은 인지 심리학 얘기다. 심리학에 ‘인지’라는 말이 붙는 것이 생경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인지 심리학도 엄연히 심리학의 한 분파다. 인지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작용을 연구하고, 그러한 정신 메커니즘이 인간의 마음을 형성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목한다. 


이 책이 말하길, 인간은 육체노동을 분업하듯이 지식노동도 분업한다고 한다. 간단히 이 서평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왜 이 서평을 읽어보려 ‘마음’먹었는가? 지식에 관한 책이 궁금했고, 그에 대해 간추린 지식을 알고 싶어서였을 테다. 한편 나는 왜 이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었는가? 나 역시 지식을 다룬 이 책이 궁금했고,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지식들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어서였을 테다. 반면 이 책의 저자들은 어떻게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는가? 인간의 정신작용에 유수한 학자들이 일궈놓은 기존의 지식들을 공부하다가, 인간의 정신 메커니즘에 관한 자신들만의 지식이 하나 형성되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그 지식을 한권의 책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이 책, 《지식의 착각》이다. 말하자면 내 서평은 독자의 앎을 보완하고, 이 책은 나의 앎을 보완하며, 이 책의 저자들은 속칭 ‘거인들의 어깨’에 자신들의 앎을 보완했다.


비단 서평만이 아니다. 당신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역시 인간들의 지식노동이 성공적으로 분업한 결과물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최첨단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온갖 과학 지식, 기술 지식, 심지어 예술 분야의 지식까지 총집합해야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서로 간의 앎에 기대어 기능적으로 빼어나면서도 심미적으로도 훌륭한 최첨단 기기를 창조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간의 앎에 ‘기댔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탄생할 수 있었고, 컴퓨터가 계속 진보할 수 있었다.


"인지 노동의 분배는 인지가 진화한 방식과 지금 작동하는 방식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지식을 공유하므로 달에도 가고, 자동차와 고속도로도 만들고, 밀크셰이크와 영화를 만들고, TV 앞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다. 이 모든 활동은 사회를 이루고 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지 노동의 분배 덕분에 우리는 야생에서 혼자 살지 않고 사회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산다."(161p)


출처 : 매일경제(http://news.mk.co.kr/newsRead.php?no=31177&year=2012)

* 과학자 '아이작 뉴튼'이 했던 말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뉴튼이 창안한 문구는 아니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저 당대에 많이 회자되던 말이었고, 뉴튼이 이를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는 태초의 인지 심리학자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개개인들에게 경고한다. 인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 자체는 결코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개 인간은 절대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대부분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예시로 자주 욕실 변기를 언급한다.(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결코 불결한 얘기는 아니다.) 욕실 변기는 얼핏 보기에 작동 방식이 무척 간단해 보인다. 우리가 변기 레버를 살짝 누르거나 내리기만 하면 변기가 알아서 그 소명을 다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변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레버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면 우리는 당황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난감해진다. 그 순간 우리는 그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변기가 무척 낯설게 보인다. 그리고 결국 ‘전문가’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변기를 고친다. 우리는 정작 욕실 변기의 레버만 조작할 줄 알았을 뿐, 변기의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아는 바가 없었던 셈이다.


저자들의 경고를 듣다보니 마치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잠언이 연상된다. 한마디로 자신이 뭘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는, 무지(無知)의 지(知)다. 그러고 보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태초의 인지 심리학자였다고도 할 수 있다.


저자들은 ‘무지의 지’라는 자세를 갖췄을 때 더욱 지혜롭고 슬기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자들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더 많이 알려고 하되, 자만하지 말라!” 우선 인간은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은 애당초 지식을 추구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궁금해 하고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론과 원칙을 세워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진화의 법칙은,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개인이 얻는 지식의 범위와 깊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늘 예의주시해야한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지식을 갈구하되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는 지식에 개방적인 태도, 그것이 저자들이 말하고 있고 소크라테스도 말했던 ‘좋은 삶’이다.


지식노동도 분업하는 인간사회


"다만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질 테고, 그런 면에서 점점 더 사용자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 (중략) … 앞으로 우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훨씬 더 무지해질 것이다.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기술은 항상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늘 친숙해 보인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줄어드는데도 우리는 계속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이해의 착각은 한층 심해진다."(191p)



전문가를 존중하는 지식 공동체


이 책은 인간 개개인만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와 인간 사회가 지식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인간 사회는 사람들 각자가 지식노동을 분업한 공동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사회는 곧 지식 공동체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본인의 지식을 확장할수록 생존에 유리해지듯이,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로 공동체 안에 축적된 지식을 개선하고 발전시킬수록 영속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자들은 특히 정치, 과학, 기술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전문가들의 지식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반(反) 지성주의에 대해 우려한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에 대해 사람들이 반감을 갖는 세태를 말한다. 반지성주의자들은 지식인들이 주로 대중들이 필요로 하거나 선호하는 사항들과는 무관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학문 또한 쓸모없는 것들로 치부한다. 엘리트주의에 반대하거나, 실용적이지 못한 관념론을 배척하려는 반주지주의도 반지성주의의 일종이다. -보편화된 견해는 아니지만- 최근에 영국이 자국의 UN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브렉시트(Brexit) 사태나, 미국 대선에서 전 세계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안들을 반지성주의가 현실적으로 방증된 사례라고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반지성주의 역시 지식의 착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가끔 대중들이 보기에 어떠한 이론들은 직관적으로 현실과 괴리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서 결국 그 이론이 옳았다고 증명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전에도 과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안전하다며 누누이 국민들을 안심시켰지만, 대중들이 공포와 흥분 속에 과격한 행동을 보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몇 년 후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민망해진 대중들이 과거의 요란법석을 짐짓 모른 척 한 적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지성주의 사회',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


저자들은 집단지성 안에 전문가들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집단지성의 결과물 또한 신뢰할만한 것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전문가들이 그들의 지식을 일반인이나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의욕과 동기를 북돋는 사회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분야의 최첨단 이론이 융합될 때 사회는 정치‧과학‧기술적으로 진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식을 나눠쓸수록 개인은 더 나은 삶을 누리고, 국가는 더 나은 나라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착각》이 주는 교훈이자, 대명제다.


"지도자는 또한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람들의 지식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강력한 지도자는 특정 주제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어서 지식 공동체를 활용한다. 나아가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안다. … (중략) … 그러나 성숙한 유권자라면 세상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는 지도자를 가려내려고 노력한다."(2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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