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과 아빠 집
동생과 아빠의 집을 갔던 날, 아빠는 j를 찾았다. j도 같이 오지 그랬느냐고.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은 인생이 흔들릴 만큼의 큰 계기가 있어야 변한다는 말을 믿게 된다. 암이 걸리지 않았다면 술을 끊을 일도 없고 담배도 죽기 직전까지 피웠겠지. 그리고, 나는 아빠를 영원히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찾아온 암은 어쩌면 기회가 아닐까. 아빠에게도. 나에게도.
아빠와 나 그리고 동생은 서로를 마주 보며 저녁을 들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상.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담긴 반찬과 고기와 무가 골고루 담겨있는 뭇국. 그 옆에 놓인 수저와 젓가락 받침을 집어 들곤 동생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아직도 아빠는 엄마의 밥상이 얼마나 형편이 없었는지를 묘사한다. 혼수로 장만한 깨끗한 그릇에 담긴 설익은 밥. 겨우 한두 가지의 반찬과 찌개가 없는 밥상. 엄마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아빠의 차가운 시선. 그리고 식탁에 탁 놓아진 젓가락. 엄마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공포와 부당함 앞에서도 매번 침묵을 지키는 엄마의 모습도 아빠는 참지 못했다. 아빠와 엄마 두 사람은 모두 서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고, 참았고, 체념했다. 엄마는 아빠가 집을 떠난 순간부터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마 오늘도 엄마의 저녁은 삶은 계란과 고구마일 것이다.
아빠는 밥을 먹다가 j 안 데려 오길 잘했다. 했다.
아빠가 말을 시작하자 동생은 아빠가 보란 듯이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아빠는 동생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무례함은 사실 편안함에서 나오는 걸까? 하고 생각해 보다가 결국엔 가족이라는 건 정말 희한하다.라는 결론.) 아빠는 지난 십 년간의 세월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그러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했다. 아빠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우리에게 말했다. ”내가 돈 없으면 너희는 날 버릴 거야. 당연한 거지. 당연한 거야. “
두서없이 과열된 감정을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것이 내겐 일종의 참회였다. 아빠의 연락을 피하던 때, 아빠가 죽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미안함. 이런 종류의 참회는 자책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 속엔 오래된 원망과 싫증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흉터가 자리하고 있어 언제든지 미안함은 원망으로 바뀔 수 있었다. (조금 더 언성이 높아지고 엄마에 대한 불만이나, 우리에 대한 잘못을 얘기한다면 금세 미안함은 원망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아빠 혼자만의 독백이 끝나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쉬더니 “그냥 사는거지 이런식으로도.” 했다. 당연하게도 아빠에겐 젊음도 패기를 부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체념하고 받아들일 방법밖에 없었다. 천천히 깜빡이는 눈. 숨소리. 나는 허공을 응시하는 아빠의 늙어버린 얼굴과 이어지는 고요에 덪붙일 말을 찾지 못해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