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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pr 03. 2019

바이스(Vice)

악덕한 대리인의 민낯을 드러내다

페르시아 만에서 전쟁이 터지자마자
TV들은 모조리 전쟁 생방송 체제로
돌입하였다.
올림픽보다도 세계 권투 헤비급 타이틀
매치보다도
더 많은 시청률을 올려주며
시청자들은 사막 위 폭풍을 바라보았다.

한밤중에 이루어진 다국적군의 바그다드
시가 공습에 대해 한 기자는
<미국 독립기념일의 불꽃놀이를 일백 배 확대한 것 같다>
고 말했고,

미 ABC TV의 앵커맨 피터 제닝스는
<이것은 멋대로 진행하는 쇼>라고
토를 달았다.
한국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는
<막상 전쟁이 터지고 나니 후련합니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인지
주가가 폭등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라면서 투자자들은 오히려 전쟁을
즐기는 것 같았다. (1991년 1월 19일 자 동아일보 중에서)

엄청난 인명의 살상이라는
대학살의 느낌은 없고
불꽃놀이 생방송과 주가의 폭등과
앵커맨이 영웅이 되는
찬란한 쇼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인간의 모습을 딱 두 번 보았다.
방독 마스크를 쓴 엄마가
우주인 같은 모습으로
병원의 비닐보호막 속에 누워 있는 환자 아기를
들여다보는 장면이었다.
슬퍼하는 여인과 아픈 아기의 눈동자는
서로 부딪치며 이런 최후의 암호를
주고받는 듯했다.
― 인간은 이제 이 세계의 중심 명제가 아니지요,
그렇지요? 호모 사피엔스 여러분?

그리고 쇼핑을 하려고 세계 각국의
백화점마다 슈퍼마켓마다 벼룩시장마다
현찰을 든 손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비싸게 팔리고자 하는 욕망과
값싸게 사들이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헐리우드 쇼보다 더 재미있는 쇼는
시시각각 진행되고
비닐 위에 사진 실크스크린 된 것 같은
인간의 형체 비슷한 뭉그러진 모습들이
이리저리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욕망의 질주로 부윰하게 떠오르고 있는
몽중보행이여.

- 김승희,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텔레비전에서 이라크 전쟁 소식을 접하는 내가 그랬다. 첨단 무기의 정확성에 감탄하고, 악의 축이 축출되는 광경에 열광했다. 화염 속에서 스러져 가는 생명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더 근본적으로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전쟁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는지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다.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이미지에 현혹되어 전쟁 이면의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바이스(Vice)>는 그 진실에 접근한다. 딕 체니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자본의 탐욕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보여 준다. 딕 체니는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두 번이나 낙제할 정도로 예일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와이오밍 대학교로 편입학하여 그곳에서 학사, 석사까지 마쳤다. 그에게는 14살 때 처음 만난 린이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술에 절어 방탕한 사고뭉치였던 딕 체니는 린에게 심각한 경고를 받고, 자신의 여인에게 인정받는 남자가 되어야겠다는 욕망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정치계에 입문한 딕 체니는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의 행보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일일 뿐, 정의감이나 사명감 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욕망은 어느덧 거대 석유 회사 핼리 버튼의 CEO 자리까지 도달한다. 그가 탐욕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조지 W. 부시는 부통령 자리를 제안하고, 그는 수락한다.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내세우고 자신은 대리인으로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속셈으로. 그렇게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탐욕은 이데올로기로 포장된다. 


     

미국은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로 자국민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2003년 3월에 침공했다. 2011년 12월 15일에 미국이 종전을 선언할 때까지 이라크 전쟁은 약 백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악의 축을 제거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는 이데올로기의 배후에는 이라크 전쟁으로 395억 달러를 번 거대 석유 자본의 탐욕이 있었다. 딕 체니는 거대 자본의 성실한 대리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화 <바이스>는 자본의 탐욕이 이데올로기로 포장되고, 이데올로기의 횡포가 수많은 인간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풍자의 방법으로 보여 준다. SNL 작가 출신의 감독이 구사하는 풍부한 위트는 풍자의 무기가 된다. 극의 흐름을 유지하며 수시로 등장하는 내레이션.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 행간에 넘쳐 나는 웃음은 자본의 이미지 쇼에 현혹되어 있던 대중의 눈길을 진실 언저리로 돌려놓는다. 딕 체니의 농간에 놀아나는 조지 W. 부시의 우매함, 어제의 동지가 서로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리는 비정함 등은 조롱과 냉소의 대사들을 통해 웃음의 대상이 된다.

  

쿠키영상의 웃음은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풍자한다. 쿠키영상에는 관람객들과 동일 선상에 놓일 수 있는 일반인들의 무리가 등장한다, 그중 한 명이 이렇게 외친다. 영화의 모든 내용은 ‘진보 좌파’의 일방적인 관점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그 말을 한 사람이 트럼프를 지지한 사실을 공격하는 또 한 사람이 등장하고, 좌중이 엉켜 붙어 벌어지는 한바탕의 난리. 대사의 위트와 상황의 우스꽝스러움은 마지막까지 웃음을 선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좌우로 편을 갈라 갈등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환기한다. 웃음의 껍질 속 현실의 알맹이는 참 씁쓸하다.


<바이스>의 다른 무기는 이미지이다. 자본주가 대중을 현혹하는 데 최대의 무기인 이미지에 이미지로 맞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진실을 보여 준다. 실제 인물들을 쏙 빼닮은 배우들의 분장 이미지는 지루하고 무거울 수 있는 정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영화 속 이야기가 실제 정치판의 관찰 카메라처럼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는 믿음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모여진 대중들의 눈앞에 매스컴에 노출되지 않은 이미지를 제시한다. 추악한 욕망이 질주하는 맥락 속에 매스컴에서 보여 주지 않은 피해자의 이미지를 배치함으로써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하여 이라크가 가지고 있던 석유 자원을 값싸게 차지하려는 자본의 민낯을 부각한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감독의 특출한 감각의 덕뿐일까? 이라크전이라는 큰 사건도 먼 나라 얘기로만 여기던 나도 영화 속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이 세계에 중심에 자본이 놓이고, 인간들은 자본의 악덕한 대리인으로 전락한 현실. 대리인들이 내세운 이미지에 현혹되어 전쟁이라는 대학살을 불꽃놀이 쇼와 주가 폭등의 호재로 즐기는 대중들. 영화 <바이스>는 이러한 현실과 대중의 문제를 딕 체니의 간교함과 조지 W. 부시의 무능함을 풍자함으로써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에게 호소한다. 인간이 자본의 대리인이 아니라 이 세계의 중심 명제가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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