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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pr 22. 2019

믿음에 관하여

시내주행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매일 고속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려 출퇴근을 한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 말이죠. 차가 많기도 하고, 신호에 따라가고 서기를 잘해야 해서 어렵더라고요. 신호와 차선, 앞뒤 차와 옆 차의 상황 등 신경 쓸 일이 참 많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입니다. 어느 날 옆 차선에서 불쑥 제 앞으로 끼어든 차량에 놀란 이후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차선이 있기는 한데, 옆에서 달리는 차들이 그 선을 갑자기 넘어올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긴 것이죠.     


믿음이 깨져 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운전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다른 차량들이 차선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가속 페달을 밟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고민 아닌 고민을 저보다 운전을 훨씬 잘하는 아내에게 털어놨더니 아내가 말합니다.     


“그럼, 운전 못 하는 거지, 뭐.”     


무성의해 보이는 답변에 서운해하는 제 표정을 읽었을까요? 아내가 첨언합니다.     


“다른 차들은 신경 쓰지 말고 오빠 차선만 잘 지키면서 가. 내 차선만 잘 지키고 있으면 사고 나도 과실은 없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 차선 안 지키는 일까지 미리 신경을 쓰면 어떻게 운전을 해.”     


듣고 보니, 이 충고 낯설지가 않습니다. 비슷한 충고가 떠올랐습니다.     


사회 초년생 딱지를 떼고 후배들이 생길 때쯤 일입니다. 후배들에게 참 많은 관심을 쏟고 온갖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살뜰히 챙겼었죠. 후배들도 무척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믿음이 아주 커졌을 때, 소위 말하는 ‘뒤통수’를 세게 맞아 버렸습니다. 사람들 대하기가 무서워졌습니다. 겉으로는 저러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나만 또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뒤통수 맞기로는 저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선배를 찾았습니다. 소주 몇 잔을 마시고 선배가 하는 말,     


“그래도 믿어. 사람들 믿은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배신한 사람이 잘못한 거지. 너나 나나 생긴 대로 살자. 우린 또 사람들 믿을 거야.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바라던 대답이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내가 당해 보니까 사람 믿을 거 못 되더라’, ‘믿으면 너만 손해다’, ‘너 자신만 믿고 아무도 믿지 마라’ 등등의 반응을 기대했었죠. 그러면서 둘이 뒤통수친 사람들 실컷 욕하고 털어 버리려고 했었나 봅니다. 하지만 선배는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믿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게 우리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정의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믿음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믿지 못하는 순간, 불안이라는 지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요즘엔 시내주행이 그리 겁나지는 않습니다. 나름 방법을 찾았거든요. 안전거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주변 차들의 움직임을 잘 살피고, 과속하지 않으면서 언제든 브레이크 밟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다니니 좀 다닐 만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과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상대가 처한 상황을 잘 살피면서 만약의 일들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를 조금씩 생각해 두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믿음은 전제로 하고요. 믿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자, 복이 있나니!’     


보이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앎’의 대상이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겠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감. 그것을 이겨 내려면 긍정적인 믿음을 갖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론 뒤통수를 맞더라도 피할 수 없었던 사고로 넘겨 버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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