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속 냉소주의자

[맹크] 리뷰

by 휴식시간


매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 1~2위에 이름을 올리는 <시민케인(1941)>.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오슨 웰스는 당시 25세였다. 위대한 영화와 천재적인 감독은 영웅 서사를 위한 최고의 조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맹크(2020)>는 감독 데이빗 핀처와 각본가 잭 핀처(데이빗 핀처의 아버지)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시민 케인의 각본가 허먼 맹키위츠(맹크)를 주인공으로 삼고 영웅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데 집중한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인 1930년대 할리우드는 발성 영화의 탄생과 스튜디오 시스템의 정착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으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다만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한 사회주의의 확산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갈등을 심화시키기도 했던, 불안정한 시대였다. 이 시기의 할리우드는 야욕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인간적인 유대 - 우정 - 은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맹크는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식 - 냉소주의 -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며 위선자들에겐 냉소를 보내고, 인간미 - 순수함과 정직함 -를 갖춘 자들과는 온정을 나눈다.


영화는 과거(1930년대)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맹크가 현재(1940년)에 시민 케인을 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민 케인은 맹크가 과거에 직접 겪은 일화들을 각색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핀처는 플래시백(회상장면)을 통해 맹크가 무슨 일을 겪었고, 이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생각했으며, 왜 과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거대 스튜디오 MGM의 대표 루이스 메이어는 자본주의의 위선자로 대표된다. 그가 대공황을 명목으로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가슴이 벅차오르는 '가족 같은 기업 경영자 연기'를 펼칠 때만 해도 맹크에게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듯하다. 뒤이어 메이어는 자신의 생일파티 장면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사인사를 전하는데, 맹크는 또다시 시작되는 그의 연기에 제동이라도 걸고 싶은 듯 재치있게 비꼰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빨갱이로 몰아가며 민주당을 적대시하는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 성향과 냉소적인 태도를 드러내며 토론을 한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명의 위선자이자 언론계의 거물 윌리엄 허스트가 부정한 방식으로 정치 개입을 한다는 사실이 허스트의 연인 메리언 - 순수함의 상징 - 에 의해 의도치 않게 폭로된다. 순간적으로 싸해진 분위기에 메리언은 불편한 듯 자리를 뜨고 맹크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따라나선다. 한편 맹크와 메리언이 함께 마당을 거닐며 할리우드 위선자들에 대한 뒷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맹크는 메리언의 구두를 대신 들어주고 그녀에게 시를 읊으며 웃게 만들어주며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는, 따뜻한 남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스트는 메이어와 달리 위선적인 모습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MGM 프로듀서 어빙 솔버그가 민주당을 비하하는 가짜뉴스를 만드는 과정에 허스트가 개입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제3자(어빙과 메리언)의 입을 통해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부정직함이 맹크에게 더 큰 무력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저들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과 어빙의 장례식에서 드러나는 인간관계의 무의미함은 맹크로 하여금 맨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게 한다. 샌시미언 식당에서 맹크가 술에 취한 채 허스트와 메이어를 포함한 사람들을 모아두고 펼치는 독백은 누구도 웃을 수 없는 풍자극이다. 허스트를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자신의 이상을 펼치다가 실패하고 하인 산초가 마련한 '마법의 궁전'에 머물게 될 거라는 전개는 거의 저주에 가까울 정도다. 냉소를 여과 없이 표출한 맹크는 장장 5분간의 독백극을 마무리한 뒤에 '구토'를 하고야 만다. 맨정신으로는 추악함을 볼 수 없었던 남자에게 어울리는 신체적 반응이다. 그런데 중간중간 분노를 드러내는 메이어와 달리 허스트는 미소를 지은 채 끝까지 관람한다. 그리고 맹크를 대문까지 배웅하며 끝까지 교양있는 태도로 오르간 원숭이 우화(자신을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한 원숭이(=맹크)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맹크의 통렬한 비판에도 끝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 허스트야말로 진정한 위선자의 모습이다. 이 모습을 세상 밖으로 폭로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쉽지 않은 법이다.


방 안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맹크는 여전히 냉소적이지만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이다. 시민 케인 이야기는 그가 과거에 펼친 돈키호테 풍자극과 유사한 지점이 많다. 특히 실패한 돈키호테가 마법의 궁전에 머물 거라는 언급은 시민 케인의 첫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현재 맹크가 과거의 시각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수년간의 태도가 쉽게 바뀔 리가 없다. 그래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작업을 도와주는 리타 알렉산더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그의 날은 위선자들에게 겨눠야 하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리타와 협력적인 파트너쉽을 맺고 마지막에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을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그리고 맹크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 메리언이 그를 찾아온다. 둘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보면 영화를 개봉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대립 같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과 그들을 내리쬐는 직사광선,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은 이것을 오히려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처럼 그린다. 이것은 과거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마음과 현재 상황에 대한 미안함을 서로 공유하며 확인하는 모습이다.


핀처는 당시를 균형감 있게 재현했다. 할리우드가 위선과 부정직함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그 와중에 순수한 메리언과 가짜 뉴스를 연출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셸리 같은 인물들도 등장시켜 숨 쉴 구멍은 만들어 둔다. 맹크는 그들에게서 진심을 느끼며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슬픔을 함께 공감하기도 한다. 그리고 맹크를 사회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가 아닌 냉소를 머금은 채 스스로 무너져가는 독설가로 묘사한다. 초반의 여유는 어느새 사라지고 맨정신으로는 현실을 마주하기 고통스러우니 술의 힘을 빌리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내뱉는 모습은 안타까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시민 케인이 얼마나 대단한 영화가 되었는지를. 결과적으로는 맹크가 승리했음을 알고 있기에 그 과정을 격정적이고 시원하게 묘사하지 않아야 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영웅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영화 버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