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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 View Sep 25. 2020

"일단 사고 맘에 안 들면 환불하지 뭐!"

소비를 조장하는 미국 소매점들의 비밀

한국 적응기

한국에 돌아오고 약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났다. 돌아오자마자 시작된 대단한 우기(?)를 보내고 나니 날씨 적응하는 것이 돌아와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기억된다. 다행히 요즘의 선선한 가을 날씨와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푸른 하늘은 다시 내가 이 나라의 기후를 사랑하게 만들고 있지만.


극한체험, 자가격리

날씨 와에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를 돌아보면 단언컨대 2주간의 자가격리였다. 그나마 큰 불평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부담 없이 시켜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이 있었고 다음 날이면 도착하는 온라인 쇼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가격리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 가족은 많은 것들을 온라인으로 사야 했다. 2년 만에 돌아오니 쿠팡은 '로켓와우'라는 서비스로 더욱 강력해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아마존프라임' 만족스러운 경험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실 아마존프라임보다 로켓와우가 더 빠르고 편리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한국의 온라인 쇼핑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미국에서는 아마존이라 하더라도 분실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배송도 익일 배송이라던가 새벽배송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물론, 분실되었다고 아마존에 리포트하면 바로 새 제품을 보내주는 등 대응시스템은 아마존이 뛰어났지만 말이다. 한국이 돌아와서 더 편해진 온라인 쇼핑을 경험하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부딪힌 문제는 반품/교환을 시도하려 했을 때였다. 미국에서는 변심이나 사이즈 오류 등의 이유로 반품하고자 하는 경우, 판매업체가 반송비용도 부담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꼬치꼬치 캐묻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어쩔 때는 사이즈 교환을 요청하면 맘에 안 드는 것은 그냥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며 새로운 사이즈로 하나 더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생활에 적응해 있다가 막상 여기서 반품하려 하니 소비자가 반송비용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처음 구입하는 브랜드의 온라인 쇼핑이라 옷 사이즈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 발생한 사이즈 오류도 소비자인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 국가답게 주기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사람들의 소비를 '조장'한다. 보통 아래와 같은 3가지 경우가 내가 살면서 느꼈던 세계 최강 소비국가의 판매전략이다.


1. 한 달 간격으로 돌아오는 할인 이벤트

우리가 가장 익숙히 알고 있는 할인 이벤트는 블랙프라이데이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블랙프라이데이보다 다른 이벤트 기간이 재고도 많았고 살만한 물건도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벤트가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보아도, 신년할인, 부활절할인, 노동절할인, 백투더스쿨할인(개학기념할인), 인디펜던스데이할인 등등등... 평소에 사고자 고려하던 물건이 이벤트 기간에 할인을 하면 사고 싶어 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한 달만 더 기다려보면 더 좋은 딜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2. 유연한 환불/교환 정책, 그리고 Open-Box Deal

앞서도 언급했지만 환불과 교환은 요구하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유연하다. 심지어 코스트코에 가면 백이면 백 반품을 위한 Return 줄이 엄청나게 형성되어 있다. 지켜보면 식품부터 시작해서 이미 여러 번 사용한 전자제품, 심지어 누가 봐도 험하게 사용했다 보이는 맥북 등도 반품 대상이다. 우리도 냉동식품을 샀었는데 생각했던 맛이 아니라 먹다 남은 제품을 가져갔지만 아무 질문 없이 깔끔하게 환불해주었던 경험을 했다. 이 경험 이후로 처음 보는 제품이라 확신이 없어 구입을 주저하는 일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일단 사서 시도해보고 맘에 안 들면 환불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코스트코의 환불정책은 동일하고 유연하기로 유명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코스트코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내가 사랑하던 베스트바이 Bestbuy 도 이러한 정책으로 앞서있는 소매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제품을 개봉한 이후 환불은 불가하나 여기는 회원 등급에 따라 보름에서 한 달간 사용하다 맘에 들지 않으면 100% 환불을 받을 수 있는 환불정책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반품하기 까다롭다는 애플 제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반품이 들어온 제품은 Open-Box Deal이라는 이름으로 할인하여 다른 고객에게 팔고 있어 조금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또 다른 고객층으로 확보할 수 있는 판매방법까지 보유하고 있어 베스트바이의 손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반품된 제품 상태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 할인가격



3. 쉬운 카드결제 절차

우리처럼 카드 결제를 위해 카드사 앱을 설치하고 여러 클릭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카드번호만 입력하고 저장해두면 이후 결제에 결제 확정 버튼을 클릭하는 단순한 절차로 결제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작용으로 카드번호 유출사고도 빈번한 것 같다. 비교적 짧은 기간 체류했던 나도 한번 카드를 재발급받고 결제 취소를 요청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결제사고에 대한 카드사의 대응이 잘 되어 있다. 내가 모르는 결제가 내 카드로 발생했다면 카드사 홈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으로 상황을 알리기만 하면 대부분의 경우 환불이 이루어진다. 이 역시 복잡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는 것이 증빙을 해야만 뭔가 해주는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 Foot-in-the-door Technique


심리학적으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큰 요구를 쉽게 얻어내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Yes”를 얻어내는 것이 궁극적 목표 달성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심리기법이다. 쉬운 환불과 교환은 고객들의 불안을 제거해주는 훌륭한 소비 조장 기법이다. 일단 소매상은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고 소비자는 새로운 제품도 도전해볼 수 있다. 그러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환불하여 소비자는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으며, 소매상은 그렇게 돌아온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가격에 민감한 고객층에 제공할 수 있다. 제조사의 입장에서도 고객들이 신제품에 대한 도전을 상대적으로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시장에 제품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이렇게 제조사-유통업체-소비자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소비 조장 전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 최대 소비국가가 된 것이 아닐까? 오늘도 “개봉 시 환불불가”라고 적혀있는 수많은 안내문을 보면서 추석선물을 준비하러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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