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캐년으로 이동하는 중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데블스 가든까지 돌다보니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오기로 했던 비가 서서히 오후부터 내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메인 스팟을 다 돌아봤다고 판단한 우리는 오늘도 일찍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요인 중에 하나는 여기서는 비이지만 다음 장소인 브라이스캐년 Bryce Canyon에서는 눈이 예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년 말, 그랜드캐년을 돌아보려고 일정을 다 세워둔 우리가족은 폭설로 인해 도로가 통제되어 중간에 일정 변경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도 있었기에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도로가 막히기 전에 다음 장소에 일단 들어가고 보자!
그랜드캐년도 마찬가지지만 그랜드서클을 운전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양 옆에 인공적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그 황량함과의 싸움이다. 양옆은 물론 앞뒤로 펼쳐지는 끝없는 평원에, 그리고 그 안에 인적이 없는 대단한 인구밀도에 감탄하게 되는 것은 물론, 여기서 기름이 떨어지거나 타이어가 펑크나면 어떻게 될까 두려움도 함께 드는 것은 경험한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전화도 안터지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맞닿드리게 되는 상상은 더 무섭다. 그래도 대자연과의 교감하는 시간은 한국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지구과학 책에서나 배웠던 각종 지층, 단층 등을 실제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대생 출신인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며 감탄거리였다.
브라이스캐년에 거의 다가와 갈 때 쯤은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신기하게도 도로는 깨끗하게 제설작업이 되어있었는데, 분명 이 황량한 넓은 길에 제설작업차가 왔다 갔을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통행량이 많아서 차들이 자연적으로 길을 만들었을 것 같지도 않고, 하여간 운전하기에 부담없이 잘 정비된 도로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서 정말 잠만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은 더 많이 내려 설국을 만들어 놓았다. 식당까지 가는 길에 개미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던 길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진에 담았으나 사실 더 인상적인 일은 식당에 들어가서부터 일어났다.
2020년을 이야기할 때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코로나바이러스. 한국에선 진작에 큰 뉴스가 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3월 둘째 주 정도가 되서야 미국은 그 심각성을 대중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조식식당에서 만났던 모습을 시작으로 다음 코스인 자이언캐년 Zion Canyon도 주요코스 폐쇄 및 롯지 사용중지를 간밤에 메일로 안내해왔다. 다행히 우리는 여기서 2박을 할 수 있었기에 급한 불은 껐지만 나의 삶이 크게 변하게 될 것이라고 아직까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여행에 집중하기로 한다. 천진난만한 아들은 눈이 좋았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 한국에서 눈을 보기는 했으나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눈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제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본 눈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 그랬나보다. 계획 수정을 해야하는 부모 둘에 비해 걱정은 없었으니 더 그랬으리라. 간밤에 눈은 생각보다 많이 와서 우리는 제대로 된 등산화를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브라이스캐년 초입에 상점이 있어서 아이젠은 물론, 등산복, 간단한 간식거리도 모두 팔고 있다. 뜻하지 않게 커플 신발을 맞추고선 (올버즈 Allbirds 이후 첫 커플신발이다) 빙산도 탈 것 같은 기세로 사진 하나 같이 찍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