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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pr 24. 2020

개팔자도 가지가지

[유기견과 전원주택은 처음이라 2]

대박이와 산책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개들이 있다. 산책길에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경우를 빼고, 고정적으로 만나게 되는 개들. 대부분 짧은 목줄에 매여 있다. 길이는 1미터에서 2미터 정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사는 개들이다. 우리 대박이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살지만, 개줄은 훨씬 길다. 우리집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길이니까, 4미터가 넘는 것 같은데, 길이를 잰 적은 없다. 

전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길었다. 우리집 마당을 한 50센티미터쯤 벗어날 정도? 우리가 보면 순하디 순한 녀석이지만, 남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더러 있어, 우리집 마당을 벗어나지 않은 길이로 조정했다. 대박이가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면 마당 경계까지 달려가 짖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어쩌다 짖을 때도 있었고, 아이들이 지나가면 신나서 짖었는데 그게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개줄을 짧게 해달라는 요청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얼떨결에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도 말했다가, 아차 했다. 그런 말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항의를 받자 나도 모르게 불쑥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마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이런, 나도 무지몽매하고 몰지각한 보호자 가운데 하나구나, 이런 깨달음이... 


그래서 얼른 개줄의 길이를 조정했다. 대박이의 몸짓이나 짖는 소리가 위협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대박이가 짖는 것을 위협적으로 느꼈다면, 그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혹은 우리가 기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하므로. 그래서 산책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대박이를 데리고 일단 피해준다. 검은 색 털에 덩치가 크니, 무서워하거나 위협적으로 느낄 수 있으므로. 


한 번은 산책을 할 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는 노인과 젊은 여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거리는 10여 미터 남짓. 대박이를 데리고 샛길로 빠져 그들만 마주치지 않게 하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거기서 끝났으면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이 우리를 지나치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 이 분은 내가 미리 피해준 것을 아는구나. 물론 상대가 알아주기를 기대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의미겠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내 대답.


대박이와 산책 나가서 만나는 개들을 보면 개팔자도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종일 짧은 개줄에 묶여 평생을 살아야 하는 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정적으로 만나는 개는 열두 마리쯤 된다. 먼 발치에서 보이는 개들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더 많아진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펜션집 개 두 마리 역시 늘 묶여 있다. 남편이 그런 녀석들이 불쌍하다고 같이 산책을 할 때면 간식을 챙겨가서 먹인다. 그래서 녀석들은 남편을 보면 좋아서 난리다. 꼭 마실 갔다 돌아온 쥔 반기 듯이.


두 번째로 만나는 녀석들은 백돌이와 곰뎅이. 둘 다 일 미터정도밖에 되지 않는 개줄에 묶여 있다. 전형적인 시골마을 개다. 길 가에 묶어놨기 때문에 개줄을 길게 하면 사람들이 놀라기 때문에 짧게 매놨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산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다. 대박이와 서로 소닭 보듯 하는 사이. 하지만 엊그제, 대박이가 백돌이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전에는 세 마리였다. 풍산개 강아지가 있었다. 족보(?) 있는 강아지라서 그랬을 게 분명한데, 누군가 훔쳐 갔단다. 작은 덩치지만 우리가 지나갈 때면 앙칼진 목청으로 짖어대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없길래 다른 곳에 보냈구나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다. 고이 애지중지 키우려고 데려왔다는데. 그래서 개를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훔쳐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에 만나는 녀석은 롯트와일러...라고 짐작한다. 이 녀석도 줄이 짧기는 마찬가지. 녀석은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다. 개집 안에 들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보면? 당연히 목청을 높여 짖는다. 대박이는 녀석이 짖거나 말거나 관심 없이 제 갈 길을 간다.


다음은 진돗개 금동이. 근데 금동이가 맞는지 금돌이가 맞는지 모르겠다. 금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한 이름을 확인해야지 하는데, 금동이 아빠를 만나지 못해서 물어보지 못했다. 금동이는 대박이와 천적(?) 관계. 대박이가 금동이네를 지나갈 때면 금동이가 짖어대고, 금동이가 우리집 근처에 오면 대박이가 짖어댄다. 황야의 결투를 하듯이 해솔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쳐 한바탕 혈투를 벌인 적도 있다. 그때 식겁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뛴다. 


그 다음에 만나는 녀석 두 마리도 짧은 개줄에 묶여 있는 흰둥이 두 마리. 한 녀석은 온 지 얼마되지 않는 강아지인데,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란다. 강아지답게 목청이 앙칼지다. 대박이가 지나가면 두 녀석 다 짖어댄다. 덩치가 커서 무서우니 오지 말라는 건지, 미리 경계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녀석들을 지나면, 풀어놓고 키우는 개 두 마리와 만난다. 이 녀석들이 어찌나 성가지게 구는지, 이 녀석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돌아서 갈 때도 있다. 덩치는 대박이의 삼분의 일 정도 되나? 쪽수를 믿고 그러는지 멀리서 대박이가 보이면 그 때부터 짖기 시작한다.


대박이는 처음에는 이들을 '개무시' 하면서 지나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와서 이빨까지 드러내면서 짖으니, 결국은 폭발하고야 말았다. 집적거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러니, 화가 날만도 하지. 내가 잡고 있는 개줄을 팽팽이 당기면서 녀석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만 것이다. 금세라도 녀석들에게 달려들 것처럼. 한 번쯤 맞붙어 싸우고 매운 맛을 봐야 다시는 덤비지 않는다, 고 똑순이 엄마가 말했지만, 싸우라고 개줄을 놔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녀석들이 대박이에게 물려 다치면 어쩌나 싶어서. 대박이가 사람한테는 순해도 개싸움에서는 절대로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덩치가 큰 대형견에게만. 


대박이에게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리던 녀석들이 두 마리에서 세 마리로 늘었다. 강아지 한마리가 늘어난 것이다. 음, 그 이야기를 똑순이 엄마한테 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똑순이 새끼란다. 똑순이가 낳은 새끼를 똑순이 엄마가 애비에게 데려다준 것이다. 두 녀석 가운데 어느 녀석이 애비인지는 모르겠지만, 똑순이엄마는 애비라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를 들이밀고 강아지를 거두라고 했다나. 


마을 입구에서 만나는 개 두 마리. 하나는 검은색의 아주 작은 개, 또 하나는 황토색이 지한 진돗개. 이 황토가 대박이가 지나갈 때면 어찌나 심하게 짖어대는지 마을이 다 울릴 정도다. 나, 한 성깔 하거든. 이러는 것 같다. 황토는 온 지 얼마되지 않는다. 두어 달쯤 되었으려나? 황토가 처음 왔을 때 대박이는 관심을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황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관심을 접었다. 너는 짖어라, 나는 그냥 내 갈 길 간다, 이러 듯이. 황토는 대박이가 그러는 게 더 약이 오르다는 듯이 목청을 더 높이곤 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사랑이가 있다. 사랑스러운 사랑이. 털이 북실거리는 녀석인데, 눈망울이 깊고 아주 순하다. 덩치는 대형견에 가깝지만, 대형견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은 것 같다. 대박이와 비슷한 덩치지만, 털이 길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목욕한 뒤 보니 덩치가 의외로 작아 놀랐다. 대박이와 만나면 둘이 싸우지도 않고 잘 논다. 금동이와 같은 진돗개를 보면 전투의지(?)를 불태우는 대박이가 금동이를 잘 데리고 노는 걸 보면, 신기하다. 


전부 열세 마리인가? 당연히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똑순이도 있고, 할배도 있지만, 이들은 마을로 들어오는 산책코스를 달리할 때 만날 수 있어서 뺐다. 어쩌다 산책길에서 래브라도, 보더 콜리, 웰시 코기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둥이네의 둥이, 만두네의 미니도 있다. 회장님네의 스피츠도 있구나. 집집마다 키우는 견종이 다 다른 게 재미있고 신기하다. 이들 이야기도 나중에 하나씩 풀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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