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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Dec 10. 2021

대명항에서 출발해 문수산성까지

[대박이와 경기둘레길을 걷다 2] 경기둘레길 1코스

남편과 대박이. 대박이는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표정이 굳어있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12 8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경기둘레길을 처음 걷는 을. 전날 저녁, 도보여행 준비를 하면서 가슴이 어찌나 설레던지,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출발 예정시간은 오전 6. 우리가 살고 있는 대부도에서 경기둘레길 1코스가 시작되는 대명항까지 가야하니 서두르는  좋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일찍 도보여행을 마무리할  있기 때문이다.     

 

대명항 도착 예상시간은 8시.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서 대명항에 도착한 뒤 먹을 예정이다. 나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으니, 아침식사는 남편 몫이다.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예약 버튼을 눌렀다. 간식으로 달걀을 삶았다. 전부 여섯 개. 한 사람 앞에 두 개씩. 대박이 몫으로 두 개. 생수와 과자도 챙겼다. 걷는 도중에 가게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간단한 간식거리는 비상용으로 가져가는 게 좋다. 물은 필수!   


결국, 나는 잠을 설쳤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꿈나라를 대충 헤매다가 오전 5시 30분경에 일어났다. 밥은 이미 다 되어 있어 보온도시락에 담았다. 반찬 두어 가지를 챙기고, 커피를 끓여서 보온병에 담았다. 배낭은 늘 그랬듯이 각자 하나씩 가져간다. 남편의 배낭 안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예비용으로 목줄과 개줄을 하나씩 넣어두었다. 대박이는 하네스를 하고 걸을 예정이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설쳐대니, 대박이와 삼돌이가 이상한지 우리 주변을 돌아다닌다. 남편은 대박이에게 하네스를 채웠다. 삼돌아, 너는 종일 혼자 있어야겠다. 집 잘보고 있어야 해.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삼돌이는 나를 쳐다본다.      


새벽의 어스름이 가시기 전인 6시 10분에 출발했다. 대명항 도착 예정시간은 8시. 딱 좋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그런지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교통정체 없이 대명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둘레길은 경기평화누리길, 경기숲길, 경기물길, 경기갯길 이렇게 4개의 권역으로 나뉘어 있다. 4개 권역의 길은 저마다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경기둘레길이 만들어지면서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돌들이 하나씩 쌓여 탑을 이루듯이 경기도의 길들이 모여 경기둘레길이 되었다.      


이 가운데 경기평화누리길은 1코스부터 11코스까지 이어진다. 김포, 고양, 파주 연천 이렇게 4개 시군을 지나간다. 이 길에 ‘평화’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리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길 이름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분단국가라는 현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걸으면서 철책이 해안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듯 대명항은 고요했다. 멀리서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면서 항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배낭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대박이는 낯선 곳이라서 그런지 굵은 꼬리를 아래로 떨어뜨린 채 주변을 둘러본다. 괜찮아, 이제 우리는 같이 걸을 거야. 남편이 대박이를 달래듯이 말한다.      

대명항 표지판이 있는 곳에 들러 지도를 확인했다. 커다란 게와 문어 조형물이 있는 곳이다.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경기둘레길 1코스 출발지점은 김포함상공원 옆이다. 그곳에 평화누리길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아치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경기둘레길 1코스와 평화누리길 1코스(염하강 철책길)는 다른 이름, 같은 길이다. 길 이름은 걷는 것과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는 경기둘레길 완주가 목표니까 경기둘레길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   

  

경기둘레길 1코스의 길이는 13.5km, 예정소요시간은 4시간, 난이도는 하. 대명항에서 출발해 문수산성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대부분의 길이 바다를 따라 이어진다. 서해 바다를 보면서 차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에 철책이 길게 바다를 따라 쳐져 있다. 철책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바닷새들이 보인다. 그 철책을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 철책을 바라보면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게 되는 모양이다.      


8시 50분쯤 대명항을 출발했다.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라 평지가 대부분이었다. 이따금 얕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도 있지만, 걷기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 계단을 한참 오르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도 했다. 그 때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철책 사이로 보이는 해안에는 바다 철새들이 잔뜩 내려앉았다가 날아오르곤 했다. 겨울의 황량함이 깃든 바다는 바닷새들 덕분에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덕포진 표지판 앞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덕포진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격전지였다고 한다.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 이곳은 천혜의 요충지였으니 당연히 군영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그 이름이 덕포진이다.   

덕포진

병인양요는 1866년 프랑스가 침입하면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흥선대원군이 프랑스선교사를 죽이자, 이를 구실 삼아 프랑스가 함대를 이끌고 침공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은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프랑스는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신미양요가 일어난 것은 1871년. 미국 전함과 조선의 수군은 이곳 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다. 전투는 광성보가 함락하면서 미국이 승리했지만, 조선은 통상을 거부하면서 버텼다. 결국 미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두 사건은 조선으로 하여금 쇄국정책을 강화하게 만들었고, 천주교 탄압도 더욱 심해졌다.      


조선과 달리 일본은 개국을 요청하는 서양세력에 굴복했지만, 조선은 그렇지 않았다. 대단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 이후 한반도의 역사가 엄청난 풍파를 겪을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만 단정할 것은 아니리라.


길에는 이렇듯 역사가 새겨져 있다. 걷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역사를 만나 잠시 그 시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덕포진에 잠시 들러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좋으리라. 덕포진 사적지는 애완견은 출입금지라 나만 둘러보았다. 남편은 길 위에서 냄새를 맡으면서 산책활동을 열심히 하는 대박이와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고.   

12월이지만 날씨가 상당히 포근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걷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 날이 너무 좋아 걷는 걸음이 더 가벼운 것 같았다. 걷다보니 점점 더워져서 겉옷을 벗었다. 하지만 길옆의 둠벙에 고인 물이 살얼음으로 덮인 것을 보니 겨울이 맞구나 싶었다.      


길에는 곳곳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나 쉼터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길표시인 리본이나 표지판도 눈에 잘 보이도록 붙어 있었다.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쇄암리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본다. 보이는 곳마다 겨울의 황량함이 잔뜩 깃들어 있다. 원모루 나루를 지나간다. 표지판의 설명을 보니 원모루는‘높은 언덕’이라는 뜻이란다. 원래는 새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작은 포구마을이었다나. 처음에는 포구 역할을 했지만, 강화가 지척인지라 강화를 오가는 나루 역할도 했단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약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던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근대로 들어와서는 기선이 정기적으로 정박하면서 마을 규모가 커지기도 해서 한 때는 140여 호에 이르렀다고 한다.    

평화정류소. 언젠가 여기서 버스를 타고 평양으로 갈 수 있을까?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어라, 여기에 버스정류장이 있네. 하면서 다가갔더니, 뭔가 이상하다. 이름이 ‘김포 평화’인 평화정류소였다. 어느 미래에 서울과 평양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깃든 장소였다. 언젠가는 이 곳에서 평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날이 오기를...      


문수산성 입구까지 4km남짓 남았을 때부터 대박이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출발할 때만 해도 내가 남편과 대박이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내가 앞서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대박이는 천천히 걸으면서 냄새를 맡고 또 맡았다. 대박이와 산책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오늘처럼 많이 걷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은근히 걱정을 했다. 힘들어 하면 어쩌나, 해서. 대박이의 걸음이 느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힘든 기색은 그다지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걸었더니 허벅지가 무거워진다. 남편도 그렇단다. 우리,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아. 둘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래도 기분이 너무나 좋다고 남편이 말했다. 대박이와 함께 도보여행을 하다니, 꿈만 같단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문수산성 입구에 드디어 도착했다. 오후 1시쯤 되었다. 4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예상소요시간이 얼추 맞았다. 일찍 출발했더니 일찍 도착한 것도 예상대로였다.      


“시작이 반이야.”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오늘 첫 코스를 걸었을 뿐인데, 기분은 절반 이상을 걸은 것처럼 뿌듯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박이와 어디든 같이 걸으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 걸었더니, 문제가 남았다. 대명항에 주차해둔 차를 가지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박이와 여기에 남아 있고, 남편이 가서 차를 가져와야 한다. 대박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문수산성 입구에서 대명항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노선을 확인했더니, 대명항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택시를 타야 한다. 남편이 콜택시를 부르려고 몇 번 전화를 했지만, 올 택시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어쩐다?


남편이 방법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강화버스터미널로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대명항까지 가는 것이다. 버스터미널에는 택시가 있을 게 틀림없으므로. 강화도는 초지대교를 건너면 된다. 강화도로 가는 버스는 많았다. 남편은 버스를 타고 강화도로 가고 나는 대박이와 같이 남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우리를 태워주신다고 했단다. 대박이를 태워주신다는 거였다.    

 

남편이 택시를 타고 와서 나와 대박이도 같이 택시를 탔다. 대형견인 대박이를 순순히 태워주신 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대박이는 생전 처음 타는 택시라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잘 참아주었다.      

점심은 대명항에서 밴댕이회무침으로.

대명항에 무사히 도착. 그것도 예정보다 빨리. 점심 시간이 훌쩍 넘어서 대명항의 횟집에 들어가 밴댕이회무침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동안 대박이는 차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4시 10분쯤 귀가한 우리는 모두 그대로 뻗었다. 남편은 혼자 걷을 게 아니라 대박이와 같이 걷느라고 더욱 녹초가 되었던 것이다. 혼자라면 발바닥에 모터를 단 것처럼 훨훨 날듯이 걸었을 남편이 피곤해하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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