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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호철 Feb 28. 2018

시켜서 되는 것은 없다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원래 안 되는 것임을 알자

너는 왜 아빠 말을 안 듣니?

벌써 여러 번 한 이야기야.

아직도 안 했어?


요즘 우리 집에서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이다. 아이들을 향한 끝없는 잔소리.. 나도 안다 듣는 너도 숨 막히지만 말하는 내가 더 숨 막히니까...


시키지 않은 일들로 잠도 안자는 지우..그렇다고 나쁜걸 하는것도 아닌데..


그런데 과연 이러한 소통 방식이 조금의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그간 아이들을 지켜본 결과에 의하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이들의 귀로 들어가서 어떤 영향을 주었던 적은 아주아주 적었던 것 같고 갈수록 더 줄어들고 있다. 잔소리부터 걱정하는 일까지 내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다른 귀로 흘러나가기 마련이다.


나와 아이가 약속이라도 할려치면 문제는 커진다. 말은 약속이지만 나의 일방적인 약속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이에게 그 약속을 지킬 마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결과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하다.


잠시 30년 전의 나로 돌아가 보자. 나의 엄마, 아빠는 나한테 크게 잔소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있었더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나 또한 엄마 아빠 말을 코로도 듣지 않았음이 분명해진다. 그 외에 공부건 무엇이건 나는 엄마가 시켜서 해 본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한 번은 엄마가 밖으로 놀러 나가기 전에 수학 문제 몇 개를 풀고 나가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빨리 문제 풀고 나가 놀아야지가 아니라 왜 엄마가 나를 이렇게 괴롭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엄마의 시도는 대실패로 끝났고 내가 스스로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를 조금 더 늦추게 만든 부작용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꼭 30년 전의 나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도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가끔 통화하는 엄마 아빠나 장인 어르신의 걱정 어린 잔소리도 뉘에 뉘에 하며 듣기 싫은 티를 팍팍 낸다. 잔소리뿐 아니라 아내가 진지하게 하는 부탁이나 고쳐줬으면 하는 일들도 머리로는 듣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쉽지 않다.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내도, 나의 부모님도 그 누구도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바꾸거나 고치기를 바랐을 때, 그것을 곧대로 듣고 행동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뭐든 시켜서 되는 거라면 다들 판검사 의사에 성공한 사업가로 돈걱정 없고 범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었어야지... 왜 시켜서 된다고 생각했을까? 바로 5분 전까지의 내 생각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애들한테 사과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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