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호철 Jan 12. 2018

교육관이 너무 달라요

근데 내 교육관이 뭐였더라..

첫째 딸 지우는 2008년생, 그러니까 우리가 독일에 도착했던 2014년에는 한국 나이로 7살이었다. 한국식이라 7살이지 생일도 느린 지우는 독일 나이로는 겨우 5살일 뿐이었다. 독일은 5-7세 사이에 그룬트 슐레(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우리나라와 다르게 가을학기부터 시작한다. 학교에 보내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었으나 생략하고.. 지우는 독일어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는 것만 안 상태로 독일의 공립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첫아이의 첫 등교. 이때 부터 우리 부부는 새로운 갈등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반년 넘게 동생들과 엄마 아빠랑 집에만 있어서였을까 지우는 신나게 학교를 다녔다. 1, 2학년 합반이어서 언니 오빠들이 챙겨주기도 했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는 abc와 1234 수준이어서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의사소통을.. 6개월 정도가 지나자 큰 문제없이 독일어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지우는 학교에 잘 적응했고 공부도 잘 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로 이 글을 끝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초에 학교에 가면 덜 신경 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정신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수많은 일들! 한국에서 학교를 보냈어도 흰머리 100개는 생길 정도의 스트래스였을텐데 우리가 말이 안 통하니, 더구나 이곳의 학교 문화를 전혀 모르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다. 학교가 언제 쉬는지, 몇 시에 끝나는지,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밥은? 소풍 가는 것 같은데? 책을 사 오라는 것 같은데? 운동화를 가져오라는 거 같은데? 까막눈에 무엇이든 추측하며 학교에 보내는 까막눈 초보 학부모... 아이가 잘하든 잘못하든 우리는 끊임없이 그 상황을 해결하고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런 일들은 아직 남아있는 검은 머리카락만큼이나 많았다. 이런 일들이 척척 해결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고 그 와중에 우리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교육관의 차이였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교육관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사실 교육관이라고 할 만큼 뭔가를 미리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교육관에 대해 생각을 할 때면 언제나 아내와 함께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 교육관은 함께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1살 때부터 만나서 같이 있었는데 그동안 따로 교육관을 서로 다르게 정립하고 있었다면 그것도 참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아이의 교육과 관련된 일로 계속 부딪혔던 이유는 서로가 상황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 아내는 약간 과민하게 반응하고 나는 약간 무덤덤하게 반응한다. 양쪽 모두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문제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져 있는 상태라 다른 경우를 고려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많다. 무덤덤한 경우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마저도 크게 키워서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될 가능성이 많다. 또한 한쪽은 상황에 너무 몰입해 있고 다른 한쪽은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여서, 모두 실제 일어난 상황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공통적인 문제도 있다.


둘 다 상황인식이 동일하게 된 상태라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며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어떻게 같은 상황인식을 한 상태가 되느냐였다. 보통의 경우 아내가 먼저 상황을 접수하는 경우가 많고 나에게 상황이 공유되기 이전에 이미 본인이 해결책을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이후에 내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주로 일반적으로 맞는 말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입장만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말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하고 여러 근거를 가져가 봐야 아내 입장에서는 크게 설득력이 없다. 아내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다만 우리 상황에 그것이 맞느냐에 대한 의문을 가질 뿐이다.


바꿔 말하자면 아내가 아이와 관련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데 내 맘에 들지 않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내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을 가능성, 즉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아내가 하는 말들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조금 과민하게 반응했던 경우가 많았을 뿐.. 과민 반응한다는 것은 해결할 수 없는 불필요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아내 또한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내는 이미 상황 파악을 한 뒤 생겨나는 여러 가지 불안감과 고민으로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 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결국 나 스스로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아이에 대해 최소한 아내만큼, 혹은 아내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야 비로소 아내와의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그 이후에 보통 둘 중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상황 파악 후 아내가 왜 저런 의견을 내는지 이해가 되어 아내의 의견을 따르고 돕거나, 문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어 아내의 고민을 정리해줄(다른 말로 설득) 수 있게 된다.


내가 해야한다.


아이 공부를 억지로라도 시켜야 한다는 아내,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한다는 남편. 우리도 이러한 갈등을 포함해 아이의 교육과 관련해 많은 갈등을 겪고 있던 부부중 하나였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갈팡질팡했고 머지않아 부모에 대한 신뢰도 잃을 판이었다. 많은 대화와 노력 끝에 우리가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사실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의무감을 느끼지 않으며 매일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도 훨씬 즐겁게 따라오고 있다.


학교놀이. 배운 그대로 가르친다. 혼낼때는 엄마아빠가 혼내듯..


엄마와 아빠 사이의 역할 분담이 있다면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잘못이었다(돈벌이, 육아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은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하지, 문제 인식과 그에 따른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은 부부가 함께 고민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특히 아이에 관련해서 엄마의 사고방식은 아빠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빠가 아내만큼 아이를 잘 알고 이해하도록 많이 노력해야만 했다. 


사소한 버릇들부터 친한 친구, 최근의 관심사들 까지..누구보다 내 아이들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여전히 감정이 앞서고 막무가내로 내 주장만 할 때도 많다. 다만 스스로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나 최선의 해결책은 아닐지언정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남편으로서 그리고 조금은 아빠로서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아빠 되기의 함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