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 <이상한 정상가족>
20대 초반 딸 레나를 낳고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히토미. 밤 늦게 집에 들어오니 남자친구 우라가미만 보일 뿐 딸 레나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들어와도 본척만척 게임에만 빠져 있는 남자친구, 그때 그 옆으로 검은색 쓰레기봉투가 보인다.
그런데 쓰레기봉투가 꿈틀꿈틀거린다. “저건 뭐야?”라고 묻는 히토미가 묻자 우라가미는 눈은 계속 모니터를 바라본채 “응? 보면 몰라? 쓰레기야, 쓰레기”라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히토미는 버리기 위해 쓰레기봉투 가까이 다가가고, 쓰레기봉투를 건들자 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온다. 딸 레나였다.
<마더>. 일본 드라마 사상 최고의 문제작 중 하나로 꼽히지만 더텔레비전드라마 아카데미상 각본상, 도쿄 드라마어워드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각본의 탄탄함도 인정받은 드라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되며 큰 관심을 받았던 <마더>의 이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자기 딸을 쓰레기봉투에 넣어두며 학대하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친구를 묵인하는 엄마. 남자친구가 딸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며 추행하는 것을 보고도 남자친구가 아닌 딸에게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히는 엄마, 아이가 실종되었는데도 오히려 자신의 학대 사실이 드러날까 침묵하는 엄마. 나 역시 엄마이기에 이게 과연 정말 친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경악스러웠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마더>는 결코 쉽지 않은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를 쓴 작가 사카모토 유지 역시 대본집 ‘작가의 말’을 통해 본인 역시 이 극작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음을 토로한다.
침대 안에서 그날 쓴 내용을 떠올린다. 엄마가 일곱 살배기 딸을 학대하는 몇몇 장면.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써도 괜찮은 걸까?’ 아무리 각오를 해도 이런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아무리 취재해도 죄책감은 계속 생겨난다(8쪽)
그럼에도 그가 이 주제를 선택하고, 심지어 드라마 속 학대받는 아이의 이름을 자신의 딸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만든 건 학대 받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별 생각없이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마더>는 학대받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유괴’라는 방법을 선택한 여자, 그리고 본인 역시 버려졌기에 절대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이를 학대에서 구해내며 엄마가 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모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더 주목하고 싶은 주제는 ‘아동학대’였다. 왜 학대 받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생겨나는지, 부모는 그것이 학대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학대 받는 아이를 구하는 방법이 ‘유괴’라는 범죄밖에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레나에게도 유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전에 헤어나올 방법은 있었다. 레나가 집에서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담임선생님이 눈치챈 덕분이었다. 온몸에 난 상처,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늘 혼자 있는 아이, 엄마에 관해 과해서는 늘 포장한듯한 말을 내뱉는 아이. 하지만 주변 선생님들은 가정사의 문제라며 관여하지 말 것을 권했다. 아동상담소에 찾아가도, 경찰을 찾아가도 확실한 증거가 있냐고만 물을 뿐, 모두 남의 일처럼 말했다. 가정의 문제란, 특히나 아이들에 관한 문제란 쉽게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중략)
체벌은 언제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_ <이상한 정상가족> 중에서”
2016년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습관교정을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를 때리고 위협해도 된다’고 답한 비율이 48.7%였다. 자녀를 행동 교정의 대상으로 보고, 하나의 인격체라기 보다는 소유물로 보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학대 부모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똑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어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했고, 현재 아동인권을 위해 힘쓰는 김희경은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모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듯 부모 혼자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체벌을 쉽게 생각하고 용인하는 태도, 폭력에 관대한 정서, 공적 개입의 부재 등으로 인해 자잘한 구멍이 사방에서 생겨나고 결국 어디에선가는 아이가 맞아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 쯤으로 여기고 부모의 체벌에 관대한 한국 사회는 마을 전체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41쪽)”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어불성설이듯 내가 하면 체벌, 남이 하면 학대도 마찬가지이다. 그 누구에게도 아이들을 때릴 권리는 없다. 혹자는 그럴 수 있겠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쩔 수 없다고, 키워는 보고 말 하는 것이냐고.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수위는 점점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애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이도 한 사람의 인격체이며, 어른과 동등한 한 명의 사람임을 우리는 늘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