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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연 Oct 15. 2018

아름다웠던 왕비가 ‘빌런’이 된 이유

 <디즈니의 악당들 1. 사악한 여왕>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놀림을 받았더래요” 6살 아이가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워왔다며 동화 ‘신데렐라’ 노래를 불렀다. 이 아이가 ‘계모’의 의미를 알고 부르는 걸까. “oo아, 계모가 무슨 뜻인지 알아?”하고 물었더니 “진짜 엄마 아닌 가짜 엄마”라고 대답했다. 그럼 내 아이는 가짜 엄마는 다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엄마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엄마 정신이 발동한 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를 세워놓고 모든 아이의 엄마는 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계모는 다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릴 적 보았던 동화와 만화의 이미지가 컸던 것일 거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 계모는 심지어 딸을 죽여 없애려 하지 않았던가. 거울을 보며 매번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물으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여왕, 검은 드레스를 입은 백설공주의 계모인 여왕은 누가봐도 ‘나쁜사람’임을 표정과 옷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여왕은 거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으로 자신이 아닌 의붓딸 ‘백설공주’를 말하자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독이 든 빨간 사과를 들고 백설공주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 여왕은 왜 그토록 아름다움에 집착했던 것일까? 정말 자기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하는 걸 못 견뎌서 딸까지 죽이려 한 것일까? 직접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의 딸인데, 왜 딸을 자신의 경쟁상대로만 여겼던 것일까?


빌런(원래 ‘악당’을 뜻하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보다는 히어로를, 마녀보다는 공주들의 이야기를 하던 착한 디즈니가 본격 빌런 시리즈로 돌아왔다. 주인공은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들이 아닌 마녀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백설공주의 계모가 주인공이 된 《사악한 여왕》으로, <미녀와 야수>는 《저주받은 야수》로, <인어공주>는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았던 우르술라 가 주인공이 된 《버림받은 마녀》로 말이다.



왕비는 홀로 방 안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거울 속의 왕비는 조금 초조해 보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그 딸의 엄마가 되어줄 것이다.
그녀는 이 나라의 왕비가 되려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12쪽)”=



백설공주의 계모, 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의 악당들1. 사악한 여왕>은 여왕의 결혼식에서 시작한다. 여왕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왕을 보필하며 딸에게도 그 누구보다 자애로운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결심하며 궁에 들어온다. 백설공주를 ‘귀여운 우리 아기 새야’라고 부르며 사랑을 감추지 않고, 왕이 전쟁으로 인해 궁을 비울 때에도 불안해하는 백설공주를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어준다.


하지만 왕이 잦은 전쟁으로 궁을 오랜기간 비우게 되고, 왕이 전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가자 왕비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왕비를 위해 왕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물이라며 왕비에게 거울 선물을 하게 된다. 원래 왕비의 아버지는 유명한 거울 장인이었는데 왕비가 궁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신 터였다. 아버지가 그리울 것 같아 왕비에게 선물했지만, 그 거울은 왕비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하며 아름다웠던 왕비를 사악한 왕비로 바꿔간다.





아버지는 정말 잔인한 남자였죠. 진짜 짐승이었어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우리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이
그 남자예요. 그는 나를 끔찍이 싫어했어요. 네, 맞아요. 그는 나를 정말 싫어했죠.
매일 ‘못생기도 쓸모없고 눈치 없는 계집애’라고 얘기했죠. 그런 말은 그가 내게 남긴 멍이나 흉터보다
깊은 상처가 되었어요. 멍이나 흉터는 아물기라도 하잖아요.
(113쪽)



왕비의 아버지는 유명한 거울 장인이었으나 자식이 없었다. 이들의 간절함을 알았던 세 마녀는 거울 장인에게 자식을 주는 대신 영혼을 대가로 원했다. 그렇게 거울 장인의 자신의 영혼을 넘기고 자식을 얻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여왕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여왕을 낳다 숨지자 거울 장인은 자식을 아내를 빼앗아간 자로 여기고 미워하기 시작한다. ‘못생긴 아이’, ‘엄마만도 못한 녀석’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왕이 청혼을 하자 ‘네가 왕을 홀린 게 분명해’라며 차마 아버지로서 하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아픈 과거를 가진 여왕이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과거로부터 벗어나 그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잦은 전쟁으로 인한 왕의 부재와 동시에 마녀의 주문이 걸린 거울이 등장하며 그녀의 결심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모에 집착하고, 딸을 질투해 살해하는 마녀의 모습으로 변한다.


여왕의 시점으로 새롭게 태어난 《디즈니의 악당들 1. 사악한 여왕》은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가 않다. 불우했던 유년 시절, 사랑에 대한 결핍과 질투와 분노, 그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과 불행한 삶은 지금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악행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여왕의 과거를 읽고보니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며 그녀의 이야기가 슬프게 읽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동화도 좋지만, 어른이 되어 읽는 빌런들의 프리퀄은 색다르다. 아름다운 동화로 남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가 만들었던 건 아닐까. 착한 디즈니의 빌런 스토리, 재미도 있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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