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전 세계에 전대미문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여러 면에서 인간의 지난 과오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기후위기의 징후들과 함께, 인류에게 닥친 이 시련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산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자연의 준엄한 경고라는 지적에 많은 이들이 수긍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아야 할 우리 삶의 목록 가운데는 오랫동안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영위해 온 육식 문화도 들어 있습니다.
2020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 사례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가능성이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에서 H10N3형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 사례가 세계 최초로 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조류독감(AI)의 인체 감염 사례는 이번에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커지게 합니다. 지난 수년간 다른 각기 다른 형태의 AI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습니다. 이제 인수공통 전염병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된 것입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롭 월러스는 자신의 저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에서 조류독감뿐만 아니라 코로나 등 감염병의 원인으로 공장화, 기업화되어있는 ‘거대 농축산업’을 지적합니다. 조류 및 돼지 인플루엔자, 에볼라, 지카 등 근래 발생한 전염병의 거의 대부분이 집약적 농축산업과 부분적 혹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고병원성 조류 및 돼지 인플루엔자가 처음으로 뚜렷이 나타난 곳은 산업화된 도시들, 그리고 도시들 주변의 집약적 농장들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신형 감염병의 전파 경로는 이렇습니다.
거대 농축산 기업이 단일종으로 공장식 생산을 하면서, 작물과 가축의 면역력이 취약해집니다.
숲을 베고 늪을 메꾸며,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면서 잠들어 있던 병원균의 유전적 재조합이 일어나 면역력이 약해진 개체들을 순식간에 감염시키고 농장의 노동자를 감염시키며, 농축산 기업이 만든 판로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전염병이 공장식 농장에서 시작되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들이야 말로 바이러스가 생존하기에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가축을 밀어 넣는 ‘밀식 사육’ 방식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꼽힙니다. 창문이 없는 농장에는 바이러스 박멸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햇볕과 바람도 없고 분뇨 더미가 만드는 암모니아 가스에 오히려 호흡기 기능이 떨어져 감염에는 더 취약해집니다. 거기에 더해 밀식 사육에서 비롯되는 질병을 막기 위해 무분별하게 투여하는 항생제는 내성을 만들어 돌연변이 가능성을 높입니다.
우리나라도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육류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축산업은 양적으로 발전했지만 동물복지와 같은 질적 성장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970년 한국인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6kg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19kg 2019년 기준 26.9kg으로 증가한 반면 동물 복지와 사육 환경에 대한 관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조류 인플루엔자나 구제역과 같은 국가 재난 질병이 발생하면 열악한 공장식 사육 환경은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항상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많은 사회적 이슈를 통해 이제는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조명되면서 동물들도 생명 그 자체로 소중하며 가축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생겨나게 되었고 동물 복지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 5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6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7.2%가 공장식 축산을 단계적으로 개선해 나가거나 종식시켜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또 '농장동물 복지를 지금보다 향상해야 한다'는 응답도 90%에 달했습니다. 반면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이 이전보다 향상되었다'는 답은 56.7%에 그쳤습니다.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은 반면, 실제 공장식 축산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관행 등 사육환경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은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49.8%가 돼지 스톨 사육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 없다'라고 답했고 응답자 절반 이상이 무마취 '거세', '꼬리 자르기' 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닭을 가두어 사육하는 철망 우리 '배터리 케이지'에 대해 들어 보았거나 알고 있다는 응답 역시 47.2%에 그쳤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고기를 먹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식량이 되는 동물들과 평생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말 이상한 일인데도 우리 대부분은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깁니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동물복지에 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어지는 편에서는 축종에 따른 현재의 사육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 동물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