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우리는 닭의 불행과 절망을 먹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달걀의 껍데기에는 산란일과 농장 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이 중 맨 마지막 번호는 달걀을 낳은 닭이 어떤 사육환경에서 자랐는지 알려줍니다.
1번은 야외 방사장에서 풀어 키운 닭이 낳은 달걀, 2번은 야외 방사장은 없지만 실내에서 좀 더 넓은 공간에 풀어 키운 닭의 달걀을 뜻하는 반면 3번은 개선된 케이지, 4번은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된 닭이 낳은 달걀을 뜻합니다.
배터리 케이지는 철창 모양의 케이지(닭을 가두어 사육하는 철망으로 된 우리)를 겹겹이 쌓아 올린 구조물에 동물을 사육하는 방식을 말하는데요. 자유롭게 먹이 활동을 하고, 높은 데 올라가고, 모래 목욕을 하는 습성이 있는 닭의 특징에 비해 배터리 케이지가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2018년 7월부터 국내 산란계 최소 사육 기준은 마리당 0.05㎡에서 0.075㎡로 확대됐습니다.
즉 3번과 4번은 마리당 각각 0.075㎡, 0.05㎡의 공간에서 사는 닭이 낳은 달걀입니다. 4번 달걀을 생산하는 기존 농가는 2025년까지 최소 개선된 케이지로 환경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닭의 습성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0.075㎡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요? 대략 A4용지(0.06㎡)만 한 공간입니다.
산란계와 육계는 축산이 기업화, 산업화됨에 따라 일찍부터 육종과 품종개량을 통해 ‘목적에 충실한’ 결과를 얻기 위한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양계장은 공장식 축산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배터리 케이지’ 사육입니다.
*관련영상 (https://youtu.be/uUMfHnCcvFc)
효율적인 관리와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통장의 형태인 배터리 케이지는 미국에서 처음 고안되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활동량이 낮은 암탉들은 사료 섭취량도 줄어들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빠른 시간에 전 세계로 많은 배터리 케이지들이 보급되었습니다.
케이지 사육 시스템은 닭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도록 한 마리당 A4 용지 한 장 만한 크기의 철창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알만 낳게 하는 밀집, 감금식 달걀 생산 방식입니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달걀의 열 중 여덟은, 이런 사육 방법을 통해 생산되고 있습니다.
닭이 날개를 펼치려면 최소한 0.065㎡, 날갯짓을 하려면 0.198㎡가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즉 이곳에 사는 닭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날개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공간에서 알만 낳다 고기로 팔려갑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즉 알 낳는 기계로서의 산란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른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했습니다. 수면 주기를 짧게 하면서 계속 알을 낳게 하면 달걀 생산량이 높아지기 때문에 밤에도 계사는 불이 환하게 밝히고,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이 서로 쪼면서 싸우다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 농가에서는 닭의 부리를 제거하거나 불에 지집니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마취 없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동물들이 죽기도 합니다.
강제 환우는 닭이 알을 많이 생산하도록 계사 안의 불을 끄고, 물을 주지 않으면서 털갈이를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수령에 따라 낮아지는 산란율을 회복시킵니다. 일반 농장에서는 약 2년 동안 최대 3번까지 강제환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강제환우를 하는 동안 닭들은 극도의 목마름과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지난해 1월 발표한 ‘2020~2024년 동물복지 종합계획’에 따라 산란계 농가의 강제 환우는 전면 금지)
또한 경제 논리로 보았을 때 알을 낳을 수 없는 수평아리는 고기로 만들기 위해 키우는 생산비조차 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도태되어 비료로 소비됩니다.
애초에 도축을 위해 태어났다지만 자연 수명이나 삶의 질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닭의 자연 수명은 평균 10~15년에 달하지만 고기로 쓰이는 육계는 태어난 지 28일~34일 만에 도축됩니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셈이지요. 알을 낳는 산란계는 2년 정도 사니 그나마 육계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2년 평생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옴짝달싹할 수 없이 알 낳은 기계와 같은 삶에 놓이게 됩니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길러지는 대부분의 닭은 비대해진 자신의 몸집을 감당하지 못해 뼈 관련 질환을 앓고 있고, 약한 개체나 병에 걸린 개체는 같은 케이지에 있는 닭들에게 밟혀 죽기까지 합니다. 케이지에 몸을 끊임없이 비벼 깃털이 빠지고 피부에 이, 진드기 등이 달라붙어 각종 피부병에도 시달립니다. 이 때문에 국내 닭 농장들은 관행적으로 살충제를 살포해 진드기를 제거하는 방식을 사용해왔고, 살충제를 통한 진드기 제거 방식은 결국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사 상태의 닭은 ‘모래 목욕’을 통해 몸에 붙은 이물질이나 기생충을 없앨 수 있습니다. 여기엔 진드기도 포함됩니다. 케이지에 갇혀 있는 닭은 ‘모래 목욕’을 할 수 없고 한번 발생한 진드기는 밀착된 닭들을 따라 번지기도 쉽습니다.
최근의 공장식 축산 방식의 기업형 농장들은 외부에서 보면 농장이 아닌 공장 단지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부도 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 자동화돼 있지만 환경은 극히 열악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닭을 기르면서 쌓인 배설물의 냄새와 닭들이 만들어내는 먼지로 인해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든 상태가 되기 일수입니다. 이런 좁고 더러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닭들이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병이나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기 때문에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는 항생제를 다량으로 투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아직 병이 돌고 있는 것도 아닌 데도 예방적 차원에서 항생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은 이 같은 무분별한 항생제 투여가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동물 복지 측면뿐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공장형 축산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케이지 사육은 동물 복지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결국 이를 먹게 되는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케이지 프리’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는데요.
유럽연합(EU)은 이미 2012년부터 산란계에 대한 배터리 케이지 사용을 법적으로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케이지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기업들의 ‘케이지 프리’ 선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물 자유연대에 따르면 전 세계에 케이지 프리를 선언한 기업은 2,675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스타벅스는 2019년 향후 10년 이내로 자사에서 사용되는 모든 달걀을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고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1911061552001)
서브웨이도 2025년까지,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와 포시즌스도 2025년까지를 목표로 케이지 프리를 선언했습니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풀무원이 지난 2018년 자사의 식용란 제품을 10년 내 동물복지란으로 교체할 것을 약속했고, 최근에는 국내 백화점 중 처음으로 갤러리아백화점이 2023년까지 ‘케이지 프리’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전염병 확산과 면역력 저하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가 커져가면서 국내에서도 배터리 케이지 사육의 문제점과 함께 동물복지에 대한 이야기가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2012년 시작된 국내의 동물복지 인증 제도는 인증을 받은 농장의 축산물에는 표시를 부착해 다른 축산물들과 구분하고 있습니다. 2020년 현재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산란계 농장은 모두 168곳이며 이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산란계 농장 936곳의 17.9%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마릿수로는 전체 7270만 마리 중 286만 마리 정도가 동물복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또 육계 농장 가운데 동물복지 농장은 전체 1597곳의 6.1%가량인 97곳이고 마릿수로는 9483만 마리 중 720만 마리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산란계 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선 시설 개선 비용이 많이 들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인 데다가 인증을 받기 위해선 80여 가지의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발행한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 인증기준 해설서>를 보면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은 무엇보다 폐쇄형 케이지 등에 닭을 가두어 사육해서는 안 됩니다. 사육밀도는 바닥면적 1㎡당 9마리 이하여야 하는데 이는 별도 산란장과 방목장 면적을 제외한 면적입니다. 나무 등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닭의 습성을 고려해 닭 1마리당 최소 15㎝ 이상의 홰(나무 막대)를 설치해야 합니다.
또한 진드기 등을 제거하기 위한 모래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바닥의 최소 3분의 1 이상은 깔짚으로 덮여 있어야 하고 조명은 최소 8시간 이상 밝게, 최소 6시간 이상 어둡게 조절해야 합니다. 부리 자르기도 응급한 경우를 빼고는 금지하며, 강제 환우도 금지됩니다.
동물복지 농장이라고 방목 사육만 하는 것은 아니며 닭 한 마리당 1.1㎡의 방목장을 제공할 때 자유 방목에 대한 인증을 추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밀집형 사육에 비해 동물복지형 사육은 생산비용이 높고 생산량이 적어 가격경쟁력이 취약합니다. 개당 200원 전후로 거래되는 일반 계란에 비해, 동물복지인증 계란은 400~600원대에 공급되고 있습니다.
동물복지농장이 동물 복지 차원에선 좋지만 단위 면적당 마리 수를 줄여야 하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동물복지 달걀 소비의 가장 큰 적 또한 가격입니다.
한 조사에서는 동물복지 달걀 구입 의향이 없는 이유로 ‘가격이 비쌀 것 같다’는 응답이 1위(42.5%)를 차지했습니다.
동물복지 달걀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도 가격 정보를 듣고서 마음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전체 응답자들 중 동물복지 달걀을 구입할 의향은 92%였지만, 동물복지 달걀의 가격 정보를 제시하자 62.7%로 하락했습니다.
산란계 농가 역시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투자비용, 부지확보 등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독일 등 유럽에선 배터리 케이지와 동물복지 농장의 중간 형태인 다단식 평사 사육(Aviary)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케이지에서 키우되 문을 열어놓는 형태로 케이지에서는 알을 낳게 하고, 케이지 밖에서는 모래 목욕을 하거나 횃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구성한 건데요. 닭의 복지와 경제성을 고려한 중간 단계 방식의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1년에 10억 마리 이상의 닭이 도축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세계 평균보다 높고, 인접국인 중국과 일본보다도 높습니다.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하루나 한 주에 닭고기를 얼마나 먹는지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전 국민이 소비하는 엄청난 양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달걀 소비량 역시 꾸준히 증가세에 있습니다. 2015년 기준 국민 1인당 달걀 소비량은 인당 286개로 OECD 평균보다는 낮지만 미국인의 1인당 소비량(252개)을 앞서는 수치입니다.
한국인의 치킨사랑은 유별납니다.
지난해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477개로 이들 브랜드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가맹점 수만 해도 2만 5400여 개에 달합니다. 전체 치킨 시장 규모도 7조 5000억 원에 이른다 하니, ‘치킨 공화국’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른 육류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우리는 효율을 극대화한 생산 방식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닭고기와 달걀을 소비해왔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것은 수많은 닭들의 불행하고 절망적인 삶을 담보로 얻어낸 결과였습니다. 농장 동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동물에게 좋으면서도 농장주가 납득할 수 있는 사육환경 모델을 찾는 한편, 그로 인해 높아진 가격을 소비자가 감수하는 윤리적 소비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닭이 케이지를 벗어나려면, 좀 더 비싼 달걀을 사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좋은 환경에서 성체가 될 때까지 기른 육계의 수요와 공급도 늘어나야 합니다.
많은 문제들을 안고 지금까지 이어온 방식과 공생을 도모하는 새로운 방식을 앞에 둔 우리에게는 저렴한 축산물을 매일 먹기보다, 빈도를 줄이더라도 윤리적인 소비를 하겠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구를 위해, 동물을 위해,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