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고급스러운 한우의 고급지지 않은 삶
2021년 4월 18일,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 한우 농장이 탄생했습니다. 2012년 동물복지 축산 인증제도가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300여곳이 인증을 받았지만 한우 농장의 인증은 작년에야 비로소 첫 발을 디뎠습니다.
(관련영상 https://youtu.be/rLOAM221Rsw)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엄격한 인증 기준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한우 동물복지 인증 기준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물복지 축산 농장인증 심사는 동물의 ‘5대 자유’ -배고픔과 목마름, 불편함, 통증과 부상, 질병, 정상적인 행동의 표현, 두려움과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 – 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가를 기준으로 하고 세부 내용들은 이 기준에 맞추어 제정됩니다.
한우 동물복지 인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준은 급여하는 ‘사료의 40% 이상이 풀사료여야 한다는 것 (젖소는 60%)’ 과 ‘사육단계별로 두당 최소 사육 면적과 동일한 면적의 운동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소고기는 옥수수 기반의 사료를 먹여 키운 소로부터 나옵니다. 고칼로리의 옥수수 사료를 먹여야 근육 안까지 지방이 촘촘하게 축적되어 마블링이 잘 생기기 때문이지요.
소에게 옥수수와 같은 곡류를 먹이는 일은 사람으로 치면 사탕 같은 고당도의 음식을 먹이는 것과 같은데요. 때문에 곡류를 많이 먹으면 살이 잘 붙고 우유가 많이 나오지만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신체적 특성상 위 안이 급격히 산성화되면서 음식을 발효, 분해하는 미생물의 수가 현저히 줄어 좋은 영양분의 흡수가 어려워집니다. 소는 원래 곡류가 아닌 풀을 먹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산성화는 속쓰림, 소화불량, 식욕부진 등의 원인이 되고 위벽이 점차 각질화되어 염증을 일으킵니다. 또한 옥수수 사료섭취는 소로 하여금 ‘고창증’ 이라는, 위장 안에 가스가 차서 배가 불룩해지는 증상을 유발합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위가 주변 장기를 압박하고 염증을 유발하여 큰 고통을 초래하게 되는데 실제로 고창증이 있는 소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복부를 발로 차는 등 몸부림이 심해지는 증상을 보입니다.
농후사료 과다급여로 인한 대사성 질병에는 그 외에도 산중독증, 간농양 등이 있습니다. 풀사료 급여는 그렇기 때문에 소의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젖소의 경우 풀사료를 10-20% 늘리면 실제로 원유 생산량이 5~10% 줄어들지만 동물복지 인증 기준에서는 경제성보다는 적절한 반추를 통한 소의 건강에 초점을 맞춥니다.
축종을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축사에서 가장 골칫거리가 되는 것은 바로 악취입니다.
악취는 축사 바닥의 분변으로 인해 발생하고 축사 내 암모니아 농도와 습도를 높이는 원인이 되며 이러한 환경은 당연히 소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축사 바닥을 뽀송하게 관리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사육밀도가 중요합니다.
두당 단위면적을 넓히는 것 만으로도 악취를 줄일 수 있으므로 동물복지 인증 기준으로는 관행 사육 환경보다 2.8배 넓은 면적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깔짚 역시 같은 이유로 넉넉한 두께로 깔아 바닥이 건조한 생태를 유지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일부 한우 농장 -혹은 80-90년대의 농장- 을 방문해 보면 소들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질퍽한 흙을 밟고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는 많이 먹는 만큼 배변도 활발하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는 대개 우사 내에 암모니아와 부숙(축변이 발효하는 것)으로 인한 악취가 발생합니다.
재래식 우사는 대부분 이런 형태를 띠고 있지만 현재 한우, 육우 및 젖소 농장의 87%은 깔짚 우사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톱밥, 왕겨, 볏짚 등을 재료로 하는 깔짚 우사는 흙으로 된 바닥에 비해 건조함을 유지하기 쉽고 교체가 용이하며 무엇보다 축사의 위생이나 소의 건강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축사의 깔짚은 미생물의 서식 환경을 조성하여 배출되는 축분을 발효, 분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축사에 서있거나 무언가 먹고 있는 소, 일하는 소를 본 경험만 있는 분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반추 동물인 소는 밥이나 물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앉아서 보냅니다. 먹은 풀을 되새김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흙바닥이나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깔짚 위에서 사육되는 소들은 이런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분변이 질퍽하게 쌓인 곳에는 소라고 해도 앉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비육우를 대상으로 우사의 바닥형태가 일일증체량(하루동안 체중이 증가하는 정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결과 경제적이며 노동력을 절약하는 틈바닥 사육이나 흙바닥 사육에서 보다 바닥에 깔짚을 깔아준 우사에서 더 높게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깔짚 우사와 충분한 사육면적은 소의 복지와 건강을 위한 필수적 요건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한우는 암소와 수소를 거세한 거세우 두 종류로 나뉩니다. 지난해 기준 국내 한우 도축비율은 암소가 45%이고 수소가 55%이고, 수소 가운데 거세우의 비중은 90%에 이릅니다.
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육용 가축의 경우 수컷은 거의 거세를 시행합니다. 거세를 통해 중성화하는 이유는 고기의 상품성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생식기에서 나온 남성호르몬이 고기를 질기게 만들고 누린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인데요. 거세를 하면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근육 내 지방 함량이 높아진다. 더불어 수컷 특유의 공격성도 감소하여 사육이 용이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상품성이 좋은 소를 생산하여 상위 등급을 받기 위해서 거세를 시행하며 거세하지 않은 수소는 대부분 종자소로 활용되며 우리 식탁에는 거의 오르지 않습니다.
뿔을 자르는 행위인 ‘제각’ 은 일각에서는 오직 인간의 사육상 편의를 위한 잔인한 조치라는 논란이 있지만 제각을 하지 않을 경우 숫소들의 서열 다툼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거나 간혹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임신한 소의 경우 투쟁이 사라지면 유산율이 낮아지고, 통계적으로 제각을 한 개체는 일당증체량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 필요가 있다고 해도 아직 현장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보다는 단순히 안전을 위해 보정하는 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마취가 생략되거나 농장주, 비수의사에 의한 시술이 만연합니다.
실제로 제각과 거세는 소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로서 거세 시점이 늦어질수록 스트레스의 강도도 증가하여 성장률이 감소하게 됩니다. 이에 동물복지 인증 기준에서는 거세와 제각을 가급적 자제하기를 권고하고 부득이한 경우 시행은 생후 1주일~2개월 사이에 수의사에 의한 숙련된 시술 (마취제, 소염제 사용)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한우 농장의 동물복지 인증 기준 내용 중에는 실외 방목장 설치도 선택사항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소가 달리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소는 느릿느릿해 보이지만 사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실외 방목장은 이런 달리기 좋아하는 소의 본성을 살리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우(육우, 젖소 포함)의 동물복지 인증 기준은 당장 생산량의 감소를 감수해야한다는 점과 시설투자 등의 경제적인 이유로 관행 농가나 신규 농장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2015년에 한우, 젖소에 대한 동물복지 인증제도가 시행된 이후 작년까지 한우 농장은 단 한 곳, 젖소는 17개 농장만이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는 전체 젖소 농가의 0.2%에 해당됩니다. 이는 한우와 젖소의 동물복지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한우 고급육 시장은 현재 육질등급에만 국한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동물복지형 사육도 향후 고급화 전략으로 고려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두에 소개한 국내 첫 동물복지 한우의 경우 서울의 백화점에 전량 납품되어 일반 한우나 유기농 한우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가 책정되었지만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발빠른 소비자들 덕분에 조기 매진을 기록하였습니다. 가격보다는 건강한 식재료의 가치와 의미에 무게 중심을 둔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많은 분들 덕분에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희망적이라는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겠죠.
한국인의 소고기 사랑은 무척이나 각별합니다.
영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한국은 소를 120가지 부위로 먹는다.’고 할 정도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소고기를 즐기는 민족이지요.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도매시장 한우가격은 지속적으로 고공세를 유지하는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우고기는 다른 식재료와 같은 ‘필수재’가 아닌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비가 증가하는 ‘사치재’ 혹은 ‘가치재’ 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고기보다 소고기에 진심인 많은 분들께서 한 번쯤은 고급스러운 한우의 고급지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는 건강한 환경에서 비롯됩니다. 고급진 삶은 아닐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주어진 본성을 유지하며 고통과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노력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의식과 가치 있는 소비가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