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rogue. Step by step
1. 동물보호법 이야기
전 세계 동물보호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200여년 전부터 동물복지법을 제정하고 동물복지 개선에 힘을 써 왔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동물보호법을 제정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한국과 비교하면 무려 170년이 앞선 셈입니다.
세계 최초의 동물복지법은 영국 의회가 1822년 제정한 ‘잔인한 가축 처리에 관한 법 (Cruel Treatment
Cattle Act)’ 이었습니다. 이를 법제화한 정치인 리처드 마틴의 이름을 따 ‘마틴법’ 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말과 거세된 동물, 노새, 소, 양 등을 잔인하게 대우하거나 학대하면 10실링 이상 5파운드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규정을 담았습니다. 뒤를 이어 프랑스가 1850년, 독일은 1871년에 동물을 학대한 자를 처벌하는 법을 도입했습니다.
동물복지 축산의 법적 토대는 동물보호법에 기반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에 처음으로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2007년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을 비롯해 수차례의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축산법 등의 개별 법에서도 동물복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 은 동물의 “복지 증진”을 꾀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포함시키고 있으며(제1조), 동물의 5대 자유를 보장하도록 노력할 것을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제3조).
2. 과제들
동물보호법에 명시된 대로 농식품부에서는 5년마다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20~2024년 동물복지 종합계획’ 에는 동물보호, 복지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배포하고 초, 중, 고 정규교육 과정 내 포함시키는 내용, 동물학대 유형별 처벌을 차등화하고 처벌 수준 상향 검토, 경주마 복지, 동물 축제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운송 및 도축 단계 기준 구체화 등 최근 높아진 동물복지 인식을 반영하여 교육과 처벌 관련 내용을 추가하고,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농장·실험·사역동물 및 축제에 사용되는 동물의 보호·복지까지 정책 범위가 확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식 축산 위주의 축산구조와 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한 살처분 등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축산의 법제와 현실이 동물복지의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고는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동물복지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아직은 갈 길이 먼 우리나라 동물복지축산의 몇 가지 과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동물복지의 대상 확대
2020년 한 양식협회 집회 과정에서 방어와 참돔 등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길바닥에 던져 죽인 시위참가자들이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면서 물고기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나 조치는 없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정하고 있는 여러 동물복지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는 동물은 척추동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동물보호법 은 척추동물에 해당하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및 어류를 적용대상으로 포함하되, 파충류, 양서류 및 어류의 경우는 식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만 적용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어서 양식 어류의 경우에는 척추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식용을 목적으로 한다는 이유로 동물보호법에 따른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동물학대 금지와 관련하여, 주에 따라 조금씩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인간을 제외한 모든 척추동물”, “인간을 제외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을 보호대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2006년 동물복지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척추동물을 “동물”로 정의하는 한편,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여 특정의 무척추동물이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동물’의 개념 정의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의 취지에 비춰보았을 때 동물보호법에서 보호하는 동물은 ‘고통을 느끼는 모든 동물’이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스위스에서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이는 갑각류의 신경계가 정교하고 예민하여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을 경우 끔찍한 고통을 느낄 것이라는 과학계의 주장을 그 사회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소, 말, 돼지, 개, 고양이, 토끼, 닭, 오리, 산양, 면양, 사슴, 여우, 밍크’ 만을 대상으로 했다가 2018년에 이르러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 로서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가 보호대상임이 명시되었습니다. 법제화를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에 더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현재 소, 돼지, 염소, 닭, 오리 등으로 한정되어 있는 동물복지 축산인증제의 적용대상 역시 점진적으로 넓혀가야 합니다.
동물보호법 상 보호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전국 2800여 농가에서 80만마리 이상 사육되고 있는 식용견들은 국내에서도 논란을 중심에 있고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이지만 개고기 생산을 위한 개 농장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개고기가 축산물위생관리법, 축산물가공처리법 등에 따른 축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소, 돼지, 닭 등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좁은 장소에서 많은 개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농장의 개들은 이른바 ‘뜬장’이라는 케이지에 갇혀 주로 식당과 학교 등에서 배출된 잔반을 먹이며 비위생적으로 사육됩니다.
보신용으로 사육되는 곰, 오소리, 사슴 등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한때 농가 소득 증대 방안으로 정부가 권장한 곰사육은 국제적 멸종 위기종에 대한 보호 여론 때문에 1985년 곰 수입이 금지되었지만 1999년 농가의 경제손실을 보전한다는 이유로 웅담채취를 합법화하였고 현재까지도 360여마리가 한 평 남짓한 지저분한 뜬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리산의 반달가슴곰과 철창 안의 사육곰은 놀랍게도 같은 종의 곰입니다. 반달가슴곰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고 한국에서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런 곰을 웅담 채취 목적으로 사육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이 유일합니다. 한 쪽에서는 종 복원을 위해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수백 마리의 곰이 고통 속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러니인 셈입니다.
2) 사육 동물의 적정 사육과 관리, 학대의 개념 정리 필요
현행 동물보호법 은 ‘동물학대’를 폭넓게 정의하면서도, 법적 금지 및 벌칙 부과의 대상이 되는 동물학대는 상해나 신체손상 등이 수반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경우,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을 사육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상해나 신체손상 등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법적 제재를 할 수 없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우리나라 역시 동물복지법이 선행된 다른 나라들의 기준을 참고하여 동물학대의 개념 정리와 금지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지정 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축산동물에 대한 비윤리적 사육과 이로 인한 축산물의 질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돼 왔습니다.
축산법에 명시되어 있는 축산물의 안정적 공급은 양적 공급 뿐만 아니라 국민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질적 공급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열악한 사육환경이 가축의 스트레스, 항생제 남용 등으로 인해 구제역, AI와 같은 질병 발생이 이어질 수 있고 국민건강의 위해 요소가 될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해서라도 학대의 기준과 대상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생명 존중에 관한 인식 제고
서두에서 알아본 대로 유럽은 19세기 초부터 동물복지법을 제정해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3월10일 세계 최초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규정을 민법에 신설했고, 독일은 1990년, 스위스는 2002년 민법을 개정하면서 동물에 사람, 물건과 구분되는 ‘제3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아직도 민법에서 동물을 점유,소유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됩니다.
법무부는 작년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라는 조항이 포함된 민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그동안 법체계상 물건으로 취급받던 동물의 법적 지위가 생명으로 바뀌는 것은 시대적, 사회적 흐름에 따른 국민의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법제도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가축사육업자를 포함한 개개인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동물을 기르는 책임감의 무게 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제도적 장치를 강화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20~2024년 동물복지 종합계획’ 에 동물보호, 복지교육 프로그램을 초, 중, 고 정규교육 과정 내 포함시키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동물보호법은 ‘인간에 의해 동물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하고 잔인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출발했습니다. 따라서 동물보호법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고통’입니다. 동물보호를 다룬 기사마다 ‘넌 고기 먹지 마라’ 유의 댓글이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불가피하게 동물을 죽이더라도 고통을 최소화 하여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동물을 이유 없이 때리거나, 건강을 상하게 하는 환경에서 키우거나, 동물의 본성에 맞지 않게 키우는 것 모두 ‘고통’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동물학대에 대한 새로운 양형기준의 마련도 지속적으로 요구되어 왔습니다.
2019년 울산지법은 진돗개 학대범에게 벌금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동물 역시 생명체로서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동물학대 행위는 사회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존재에 대한 혐오 내지 차별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동물학대 행위를 방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가장 미약한 존재에 대한 폭력적이고 잔인한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라며 장문의 양형이유를 달았습니다.
4) 동물복지 관련 예산, 인력, 지원 증대
최근 소비자 인식 변화에 따른 수요 증가로 농가에서도 동물복지 축산인증에 대한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초기투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사육농장들이 상당수인데다가 관행 축산 대비 생산성 하락으로 안정된 수익보장이 우려되면서 2020년 12월 기준 동물복지축산 농장인증을 받은 농가는 297곳에 그치고 있습니다. 닭을 제외한 축종에서 전체 사육농가(두수) 대비 동물복지 축산 인증농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1%정도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동물복지축산의 확산을 위해서 정부 뿐만 아니라 생산자 단체 차원의 홍보, 시민사회 차원의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인식 전환 운동, ‘동물복지축산 자조금’을 조성해 생산자 단체 차원의 홍보 등의 활동 확대, 농식품부 산하 ‘동물복지부’ 신설, 동물복지축산물의 시장 경쟁력과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한 ‘동물복지축산 직불제’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증제 확산과 축산동물 복지확대의 성패는 동물복지 축산물의 소비 활성화에 달려 있습니다.
4. 맺음말
동물의 고통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동물보호법은 동물(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와 규칙,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국가의 의무까지 담아내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변화의 방향은 ‘공존’입니다.
2018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의 목적에는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문항이 추가되었습니다. 동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소유’ 개념을 넘어 ‘생명윤리에 기반
한 공존의 대상’ 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동물복지’라는 용어가 인간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복지를 동물에게까지 보장할 필요가 있는가 의문을 가질 지 모르지만, 동물복지가 그 용어 만큼이나 거창한 것을 동물에게 보장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육되는 가축으로서는 그 생명을 존중받는 데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축산에 있어서 동물복지란 그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동물로 하여금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고 타고난 습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 뿐입니다. 가축을 이용하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를 하면서 조금 더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자는 것이지요.
작년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약 2억마리 정도의 가축을 기르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수는 1500만 마리에 이릅니다. 동물과 더불어 사는 것이 상식이 된 세상에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사람도 아프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건강은 복지의 기본이 되며 동물의 건강한 삶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보장됩니다.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동물복지가 중요하다'는 생각,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 이라는 이 두가지만 기억하면서 모두가 동물복지에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동물 복지는 결국 인간의 복지와 연결됩니다.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두루 걱정할수록, 주어진 상황과 문제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갈수록 모두의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