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다. 불성실한 거 아니냐, 집도 돈도 없으면서 무책임한 거 아니냐, 일하며 육아도 잘하는 엄마들이 널렸다며, 가끔 스스로를 비난해 보기는 한다. 그러나 비난보다 가난보다 두려운 것은 나의 폐허라서, 나는 불성실과 가난(먹고는 산다)을 택한다.
어떻게 지내?
성의껏 남편을 출근시키고, 몇 번의 욱을 참아내며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면, 나는 그냥 '존재'한다. 열라게 살림을 하기도 하고, TV를 틀어 놓고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며, 거룩하게 말씀 보고 기도하기도 한다. 운동을 하기도, 혼자 나가 막 싸돌아 댕기기도 하고, '독서가'인양 열정적으로 책을 읽기도 하다가, '작가'라도 된 양 글을 막 써대기도 한다.
이게 대체 뭘 하며 사는 거냐고
내 스스로에게도 답이 되지 않아
나는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한동안 답하지 못한다.
들여다보니 나는
그 시간에 오롯이 존재하는 것 같다.
징글징글한 내향적 인간이 남편과 아이들과 부대끼기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 내겐 '존재하는 시간'이다. 돌고돌아 몇 바퀴 지긋하게 돌고 나니 이제 알겠다. '존재'하고 나면, 비로소 아이와 남편을 환대할 수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