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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Sep 23. 2022

2022년, 100일이 남았더라

인생 리모델링, 될까?1

100이라는 수가 주는 이 완전하고 견고하고 충분한 느낌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나는 나의 백일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수능을 100일 앞둔 날엔 격하게 비장했지만 100일이 지난 후의 입시는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남자 친구와의 100일을 요란스럽게 치를 만큼의 낭만적 연예도 없었다

100일의 대한 좋은 기억 하나 없지만

이 한 해의 남은 날수가 100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비장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을 보내 놓고 나면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치열한 살림과 육아의 시간 속에서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을 마주한 나는

주로 무력하고 찌질하며 슬프다

'좋은' 마음으로 '자분자분'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자는 '소중한 결심'은 날마다 폭격을 맞는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뭐 하나를 이루어 내지를 못하나...

착잡한 하루의 마감은 나의 습관으로 어버린 듯하다


살림의 버거움과 싸우고 부대낀다  

육아를 회피하고

몸의 피로에 눌리고

수시로 상실감에 슬퍼하고

타인의 시선에 위축된다

해결하지 못한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가 부유물처럼 떠다닌다  

나름 멀쩡하고 비교적 평범한 나의 외적인 삶 아래

침잠되어 있는 오물들이 이렇게나 수북하다


이제는 이것들과 싸우고 싶어졌다

격렬하게 싸우고

용기 내어 상처를 입고

그렇게 한 번은 기억될 만한 성취와 각인된 상처를 내 인생에 지니고 싶어졌다

내가 바라는 삶과 내가 진짜 살고 있는 삶의 멀고 먼 괴리는 괴롭고 지친다  




이 한 해는 얼마나 남았는가

달력의 마지막 날부터 거슬러

하루하루 짚어 나가는데

멈춰 선 오늘이 100이라는 숫자에 닿는다

나는 '기회'로 '도전'으로 이 숫자의 의미를 취한다


30일 정도는 실패해도 70일의 성취를 인정할 테니

맘먹고 한 번 싸워 보자고, 나를 집요하게 설득해 보는 날이다


나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고

내 인생의 기본값을 바꿀 수도 없다

터를 옮길 없고 뼈대를 뽑아버릴 수도 없으나 리모델링은 가능하지 않겠냐며

좀처럼 꺼지지 않는 어떤 작은 열정을 향해 불씨를 지펴본다

좋은 마음으로 자분자분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러나 그것이 내 안에 있는 불씨를 죽이는 일이라고 스스로 오해하지는 않기를




삶의 완성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아무리 쫓아보려 해도 그건 허상에 불과했다   

완성은 없고 끝은 모르네

방향을 조율하며 과정을 살아갈 뿐이다

삶의 실체는 방향성과 과정뿐이라는,

어정쩡하고 애매했던 나의 지난 반생의 결론은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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