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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Oct 02. 2022

소소하고 사소하고 몽글하게  

인생 리모델링, 될까? 10

작은 행복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이

진부하고 비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큰 행복 대단한 행복을 취할 수 없는 자들의

합리화이자 자기 위안 아니겠냐며

굳이 이런 말들을 많이 내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나의 자격지심과 콧대 높은 교만을 모르고 말이다


1. 상추 씻는 마음

 

부엌에 선 마음이 꽤 괜찮았던 날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했다

마음 종종거리지 않고 지긋해하지 않고

자분자분 설거지를 마쳤다 

끝낸 후의 개운함은 덤이었다

그렇게 개수대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묵혀 둔 상추를 꺼내어 씻었다

시들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었는데

정작 먹으려 하면 싱크대가 북적여 몇 번 미루던 차였다

정리된 싱크대에 싱그럽게 물을 받아 놓고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흐르는 물을 축여 씻어 주었다

그 마음이 몽글했다

짜증스럽거나 지긋하지 않았다

부드럽고 매끈하고 폭신한 마음의 온기

부엌에 선 나의 마음이 늘 그러할 수 있기를


2. 2만 원짜리 슬리퍼


발이 불편해 실내에서 신는 슬리퍼를 교체했다

2만 원짜리 기능성 실내용 슬리퍼에 블링블링한 지비츠 서너 개가 딸려 왔다

뭐 이런 걸 달아 싶은 마음이 잠시 들다가

곰돌이 모양 꽃 모양의 유치한 장식들을 끼워 달았다

하 웬 걸

기분이 좋아졌다

어차피 샤넬백을 멜 처지는 못 되니까... 라며

물질로 누리는 행복에 대해 가림막을 쳐 버린 걸 아닌가 싶다

내 처지에 맞게

저렴하게 혹은 적합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들이

충분히 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정성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바지런함이 부족한 게 아니었는지

나를 돌아본다



3. 온종일 펼쳐 놓은 이불


아이가 이불을 개지 못하게 한다

쉬는 날이니 종일 뒤굴뒤굴하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이불을 개지 않는 건 내게 걸리적거리고 찜찜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과 아이가 누리고 싶은 휴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가뜩이나 통제가 많고 잔소리가 많은 엄마라 미안하니까

오늘은 나도 한 번 양보를 한다

아이는 이불에 누워 뒤굴거린다

책을 읽기도 하고 엄마한테 종알종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건네기도 한다

결국엔 나도 아들 곁에 누웠다

아이 옆에서 나도 뒤 굴거리고 종알거리고

아이의 보드라운 팔다리를 만지작거렸다

휘몰아치듯 급한 일 해치우듯 아이를 키우지 말자


*

마음이 몽글해지는 순간들이 소소하게 몇 번 있었다

그 순간들로 인해

이 하루는 꽤 괜찮은 날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소소하다고

 작다고

순간이라고 얕볼 게 아니다

치명적인 사소함들을 더욱 발견하고 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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