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방식으로 간직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를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이너체어 스튜디오 아티클, 오클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간직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를 발견하고 기록합니다.
open and be close with things that keeps natural beauty for a long time.
지난달, 그라운드 서촌에서 진행 중인 요시고 사진전을 다녀왔다. '평일 오전에 가서 한산하게 둘러보고 와야지.' 생각했던 판단이 무색하게 전시장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입장까지는 약 1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 '브릭웰'의 풍경 덕분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나무는 그루터기가 되어 있었고, 그 옆에 자신만의 시간을 유유히 보내고 있는 듯한 둥그런 건물을 작은 정원을 품고 있었다. 품고 있으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듯한 정원의 나무들은 그루터기를 배경으로 하늘로 솟아있었다. 때문에 올려볼 수도, 내려볼 수도 있는 정원은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에는 내 옆에 있기도 했다. 그러니 궁금했다. 오래된 그루터기 옆, 정원을 만든 이는 어떤 사람일까.
Loci Studio 로사이 스튜디오
브릭웰의 정원을 설계한 로사이 스튜디오는 조경건축가 박승진 소장이 이끌어가는 디자인 사무실이다. 'Landscape, Organic, Communication, Imagine'를 의미하는 Loci (라틴어로 '장소'를 뜻하기도 함) 스튜디오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조경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데, 로사이라는 각 글자가 의미하는 바처럼 가장 돋보이는 작업들은 기존의 것들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이 해석한 교감의 공간, 그리고 사적 공간을 공적인 영역과 연결 지어 조성한 소통의 공간이다. 브릭웰도 그중 하나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골목의 통로, 누구나 벤치에 앉아 바람에 일렁이는 물빛과 나무의 흔들림 사이로 오래된 그루터기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대지는 우리의 ‘유한한’ 자원인 지구 지표면의 일부이기에,
비록 그 소유권이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대지는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지 안에 만들어지는 조경 행위 역시
공공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 월간 퍼블릭아트 (18.02)
박승진 소장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뉴욕 센트럴 파크를 자주 언급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센트럴 파크 이전 도시에서 자연이란 개인의 소유에 의한 정원들이 대부분이었고,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 농장, 채석장 등이었던 도심 한 중간에 한 세기를 걸쳐 만든 자연림이 주는 의미는 도시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시선에 그 규모만큼이나 지대했다. 이 공원에서 'Landscape Architect'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라는 말이 비롯된다고 설명하는 그는 로사이 스튜디오는 두 가지 물음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조경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가.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가.'
자연과 사회에요.
조경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가.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가.
저희 작업은 이 두 가지 물음에서 출발해요.
조경건축가 박승진
@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21.06)
Work 1 | 브릭웰
브릭웰 옆을 지키는 백송터는 한때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 수려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해 이제는 커다란 그루터기만이 남아있다. 현재는 이후 주민들이 그루터기 주변으로 새로 심은 어린 백송 나무들이 함께였다. 브릭웰을 지을 당시 건축주가 바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재료는 벽돌, 인근 백송터 자취에 호응하는 이미지'. 새로 지어질 건물이 백송터를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형태로 지어지길 원했던 것이다. 완성된 건물을 살펴보면, 건물의 중심축이 원형의 중정을 관통하는 구조로 그 모습이 마치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연못과 같다. 건물 1층은 지상과 분리한 필로티 형태로 설계되어 백송터를 향해 개방되어 있다. 시원한 개방감이 느껴지는 통로에는 도시에는 쉽게 마주치기 어려운 낯선 이름의 식물들과 건축주의 또 다른 바람, '개구리가 살 것만 같은' 연못으로 소담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거대 도시는 숲을 해치고 건설됐어요.
지형과 물길을 자르고 숲을 파헤친 폐허 위에 세운 도시에서 우리는 행복한가요?
도시 저편에, 저만치 물러선 숲이 겨우 자리합니다.
조경의 근본은 숲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그 무한한 가치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값어치 없어 보이는 숲의 잔해를 통해 삶의 본질을 되묻고 싶었어요.
조경건축가 박승진
@ 한겨레 크리틱 (21.04)
박승진 소장은 브릭웰의 정원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백송터와 연결성을 높이기 위해 백송 나무를 심을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송터에 자리 잡은 거대하고 짙은 무게감으로부터 브릭웰의 정운을 구분하고자 하였고, 이에 통로를 드나드는 이들에게 편안하고도 자연스러운 풍경을 전하고자 했다. 문화적 가치를 가진 공간과 다르게 이 소담한 정원은 특유의 자유로움 또한 가지고 있다.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관리되어 놀라움을 주는 정원의 감각보다는 무심하게 자란 듯한 식물들의 흐드러짐에서 자연스러운 멋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박승진 소장의 세심한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브릭웰의 정원은 살펴볼수록 만든 이들의 세심한 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벽돌로 질서정연하게 지어진 건물의 외형과는 달리 비정형적인 장대석 바닥으로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투박하고 비스듬한 걸음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 안에서도 정원의 풍경이 계속되기도 한다. 고개를 높이 올려야만 볼 수 있는 나무 허리는 2층에서도, 3층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그저 우연처럼 여겨지는 풍경과 걸음은 섬세한 시선과 구상의 결과물이다.
Work 2 |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2009년, 로사이 스튜디오가 조경을 설계한 어린이대공원의 '꿈마루'는 살펴볼수록 사연이 많은 곳이다. 우리나라의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과 시간을 보낸 어린이대공원이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이다. 어린이대공원이 지워진 자리는 본래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비인 순명효황후의 능이 있는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능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며 세워진 것은 일본인들을 위한 골프장(1929년 경성골프구락부 개장) 이었다. 일본인 관리자와 사업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해방이 된 후에도 골프장은 계속 운영이 되었다고 한다. 골프장이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이 된 것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당시 골프장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염두에 두어 그 용도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대공원 내부에 위치한 '꿈마루'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가진 재생 건축물이다.
어린이대공원이 골프장이던 때, 꿈마루는 클럽하우스(골프장 이용객들을 위한 휴게공간)를 용도로 1970년에 증축된 건물 '서울 컨트리클럽하우스'였다. 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탈바꿈된 후에도 관리사무소나 문화전시공간 등으로 활용되었으나, 그 용도가 변경될 때마다 반복되는 증개축으로 건물은 그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후되었다고 한다. 이에 건물을 허물고 신축을 결정하게 되며 꿈마루는 그 이름을 갖기도 전에 철거될 운명이었다. 건물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건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덕분이었다.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에 대한 목소리가 생기며, 당시 서울시 푸른도시국 최광빈 국장이 선유도공원 등 재생 건축으로 잘 알려진 조성룡 건축가에 자문을 구하게 된다. 뒤늦게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나상진이 설계한 건물임이 밝혀지고 건물의 근현대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그 건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어요. (중략)
많이 낡았고 페인트를 계속 덧칠한 상태였고,
우리가 지금 보는 당당한 구조는 있었지만,
외벽에 창이 하나도 없이 몽땅 MDF로 덧대고 틀어막아서,
무슨 재개발 현장처럼 어수선했어요. (중략)
부랴부랴 수소문을 시작했는데 (중략)
그 도면을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랬어요. (중략)
어떤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선을 긋는 프로젝트다,
그런 감이 들었어요.
기품 있게 늙어감에 대하여
@ 건축과 풍화, 조성룡
1세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떠나 꿈마루는 수평으로 과감하게 뻗어져 시원하고도 직설적인 모습이 인상 깊은 건축물이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건물의 관습보다는 실험적이고도 특유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이러한 건물의 감각이 회복될 수 있도록 그 원형 구조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과거 외관을 두텁게 막아두었던 곳을 걷어내고 드러난 자리에는 마감이나 가공 작업을 하지 않아 건물의 겪어온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과거 탈의실과 사우나로 쓰이었던 2층 공간은 골조만을 남겨두고 콘크리트 지붕 슬래브와 보를 걷어내어 야외 정원을 즐길 수 있는 옥외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조성룡 건축가는 이를 두고 '시간의 겹'이라 설명한다. '시간의 겹'에는 건물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간이 겪어온 변화의 흔적을 새로이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가시적인 오브제의 배치를 통한 드라마틱한 연출이 아니라
공간 조성을 통하여 기존의 요소에 한층 더 힘을 불어넣고
건물에는 강력한 공간성을 불어넣어 생명감으로 충만한 건물(...)
꿈마루에서 걷어 내는 작업 행위는
창조적이며 가장 근본적이고 진실한 의미에서 해체주의적이다.
이들이 행한 해체는 의미를 더함을 위한 걷어 내기이기 때문이다.
김미상 @ 와이드 AR 22호 (18.06)
무엇을 걷어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꿈마루 '오래된 정원'의 조경을 설계한 박승진 조경건축가에게도 이 질문은 동일하게 주어진 듯했다.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툰 사람에게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굳이 지워야 할 이유가 확실하지 않으면 남긴다.' 한 인터뷰에서 그가 남긴 문장들은 많은 생각들을 들게 한다. 한 곳에 터를 잡아 영 겹의 시간을 보내온 것은 다만 건축물만이 아니다. 건물과 같은 시간을 공유한 식물과 나무 역시 그 공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도시는 많은 사람이 모여사는 거대한 땅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모여서 역사를 만드는 기억해야 할 장소"라는 조성룡 건축가의 말처럼 꿈마루의 조경을 설계하는 일에 있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쓰임새를 유지하면서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버려야 할 이유가 없으면 남겨두는 것이 그의 접근이었다.
'굳이 지워야 할 이유가 확실하지 않으면 남긴다.'
저는 이러한 원칙을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적용해요.
보존해야 할 근거를 찾기보다는
버리는 행위에 당위성이 없으면 갖고 가는 거예요. (중략)
다소 '구식'일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조경건축가 박승진
@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21.06)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꿈마루에 온화한 생명력이 부각된 장소는 2층 옥외공간인 '피크닉 정원'이다. 지붕과 바닥을 걷어내 정원이 된 공간은 드러난 골조 사이로 빛과 바람이 스며드는데, 그 사이마다 산딸나무를 심어 나무 그늘 아래 사색의 공간을 만들었다. 과거 사우나 욕조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연못을 두어 순환의 공간을 만들었다. 바람에 일렁이며, 그 안에서 또 다른 생을 살아가는 수경 식물들은 공간에 새로운 시간을 부여했다. 연못을 에워싼 돌들은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나온 건물의 부자재를 재활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을 파악하는 일은 꿈마루 조경 설계에 있어 가장 앞선 작업이었다고 한다. 오래된 소나무와 감나무를 남기는 것은 물론 장소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준공비나 조형물 역시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다소 구식이더라도 그와 어울리는 설계를 하는 것. 단순히 풍경을 꾸며가는 단계를 넘어 장소가 가진 시간과 그 의미 안에 품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그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풍경인 듯하다.
by inner chair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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