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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inssoon Nov 25. 2018

계획대로 되지 않는 계획임신

 계획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더라.

 잡지 기자 5년 차에 육아잡지로 이직했다. 이전에 일했던 패션지, 셀러브리티 매거진, 여행지 등의 화려함과 짜릿함은 없었지만, 언젠가 맞닥뜨릴 내 인생의 한 챕터에 분명 도움이 될 콘텐츠를 다루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당시엔 결혼 계획도 없는 싱글이었지만 육아잡지에서 5년, 이후 프리랜서로 일한 기간을 포함한 약 7년 동안 나는 임신 출산에 대한 계획은 물론, 나름의 육아관도 이미 갖게 되었다. 정작 실전에선 그 계획의 대부분이 소용없어질 것을 모르고...  


매력적인 10,10,10 법칙


 육아잡지에서 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계획 임신'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계획 임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도서 <베이비 플랜>을 출간한 한양대학교 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계획 임신 방법을 상세히 다룬 기사였다. 오늘 배출되는 정자가 3개월 전에 생성된다는 사실, 더욱이 그 정자가 건강하려면 적어도 이전 6개월 동안 음식, 생활,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인터뷰 도중 박문일 교수님은 '10,10,10 법칙'을 강조하셨다. 임신 전에는 예비 아빠가 10개월 고생하고, 임신 중에는 예비 엄마가 10개월 고생하고, 출산 후에는 함께 10개월을 고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임신 전엔 아빠 혼자, 임신 중엔 엄마 혼자 고생하라는 뜻은 아니다. 시기별로 좀 더 힘든 대상을 강조한 표현일 뿐. 예비 아빠의 10개월은 건강한 정자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집중된다. 음주, 흡연을 줄이고(가급적 끊고) 적절한 체중관리와 더불어 건강한 식습관, 생활습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전에 없던 절제와 조절의 삶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도 필수다(실제론 이게 더 어려운 듯하다).


 예비 엄마의 10개월은 태아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모든 노력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초보 엄마 아빠의 10개월은 그야말로 핏덩이 같은 아기를 돌보는데 가능한 모든 정신력과 체력을 동원해야 한다(이 정신력과 체력이 매일 동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무튼 임신은커녕 결혼도, 심지어 연애도 하지 않던 당시에 이 명쾌한 '10,10,10 법칙'이 왜 그리 마음에 쏙 와 닿았는지... 언젠가 임신을 한다면 꼭 이 '10,10,10 법칙'을 지켜보리라, 나는 꼭 잘 준비해서 계획 임신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아쉽게도 몇 년 후 실전에서 이 '10,10,10 법칙'은 대폭 수정이 불가피했다. 우선 10개월의 준비만으로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고 처음의 야심 찬 계획은 어느새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되었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 졸업도 미룬 채 일주일에도 몇 차례 씩 난임 클리닉에 다녀야 했고, 맥주광인 남편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까지 기약 없는 금주 라이프를 이어가야 했다. 다행히 임신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10개월은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예정보다 한참 일찍 부모가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10개월은 계획대로 지켰다 할 수 있을까. 2kg 갓 넘은 두 이른둥이를 집에 데려와 10kg 가깝게 키울 때까지 둘이 함께 죽어라 노력했으니 말이다.


계획이 기다림으로 바뀌니 의지할 건 기도와 미신 뿐. 좌) 삼신할머니가 아기 있는 집으로 착각할까봐 치워버린 아기 신발. 우) 프랑스 여행 중에도 수퍼문에게 소원 비는 남편.


 그래도 절반의 성공이라면, 뜻하지 않게 임신을 '오래' 준비하면서 나와 남편 모두 '이렇게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았던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바른 식생활, 규칙적인 운동과 생활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그 덕에 남편은 평생 맥주 사랑의 증표로 간직해 온 뱃살과 이별했고, 일생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내 몸에서 처음으로 말벅지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임신과 동시에 축배의 잔을 든 남편은 금세 다시 D라인을 되찾았고(임신 초기에 이미 내 D라인보다 아름다운 D라인을 자랑했으니 그의 몸은 복원력이 참 우수한가 보다), 나 역시 쌍둥이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는 동안 말벅지의 흔적은 다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공부할 때나 일을 할 때 늘 계획 먼저 세우던 습관대로 내 인생에선 임신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어떤 이들은 계획대로 한방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임신은 -일부 행운아들을 제외하곤- 원래 그렇게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아이가 생기는 방향이든 그 반대이든 말이다. 계획대로 사는 게 제일 편했고 가급적 남은 인생도 계획대로 살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임신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도 많다. 그리고 현재, 쌍둥이 육아 고작 1년 차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선 계획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은 예감이 꽤나 분명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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