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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inssoon Jun 30. 2019

첫 수유, 낭만은 없었다

그리고 20개월 후, 그것은 다시 낭만이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14일째 되던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면회 시간이 되자 신생아 집중 치료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열흘 넘게 이곳에 드나들다 보니 손을 씻고, 소독하고, 1회용 위생 앞치마를 걸치는 속도도 제법 빨라졌다. 그렇게 서둘러 들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혹시라도 상할까 아이스팩을 든든히 채운 보냉백을 열어 지난 24시간 동안 방울방울 모아 온 모유 저장팩을 간호사에게 건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 8번 수유 중 4번은 미숙아 분유, 4번은 모유를 번갈아 먹고 있었다. 튜브를 통해 위로 직접 주입하는 수유 과정을 '먹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굳이 정확한 표현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30분의 면회 시간을 쪼개 두 아이를 만나야 하는 나는 언제나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인큐베이터 위치는 꽤 자주 바뀌어서 어제 봤던 인큐베이터에 다른 아이 이름표가 붙어 있으면 재빠르게 다른 인큐베이터를 둘러보거나 가장 먼저 보이는 간호사에게 아이의 위치를 물어야 한다. 매일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고, 또 아이들의 상태에 따라 구역을 나눠 관리하는 신생아 집중 치료실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날도 두 아이의 자리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다행히 첫째 아이는 근처 인큐베이터에 있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둘째 아이의 이름이 붙은 인큐베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해 담당 간호사를 찾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간호사를 따라 걷는 십여 초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하지만 그녀가 멈춰 선 곳엔 예상보다 빨리 인큐베이터를 졸업(?)한 둘째 아이가 보통의 신생아처럼 바구니에 누워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하고 대견하게도 나와 같은 '보통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6일 뒤 첫째 아이도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아이에게 인큐베이터는 엄마 배를 대신해 생명을 지켜준 고마운 공간이지만 나에겐 끝까지 지속하지 못한 임신에 대한 좌절, 그리고 아이와의 단절의 상징이었다. 따뜻했지만 딱딱했던, 의지했지만 한편으로 미웠던 인큐베이터와의 이별은 그래서 무척 후련했다. 인큐베이터만 졸업하면 모든 게 순조로울 거라는 나의 예상이 (이번에도 역시) 빗나갔음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로부터 하루 뒤 시작된 '수유 연습', 첫날부터 진땀을 1L쯤 쏟은 후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차라리 인큐베이터에 있는 게 나을뻔했니?"


왼쪽부터) 인큐베이터에서 튜브로 아기의 수유를 준비하는 간호사의 손은 빠르고 능숙했다; 애증의 인큐베이터; 인큐베이터를 졸업하고 신생아 바구니로 자리를 옮긴 둘째 아이   


수유를 '연습'하다


 31주에 태어나 3주를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보낸 아이들은 임신 기간으로 치면 34주 차에 접어든 셈이었다. 미숙하지만 젖꼭지를 빨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3주간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 공급하던 튜브를 입에서 제거하니 아이들은 한결 더 예뻐 보였지만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는 일은 나와 두 아이 모두에게 만만치 않았다. 편하게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을 시기에 엄마 젖도 아니고 얄궂은 젖병을 빨아야 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안쓰러웠고, 익숙지 않은 손길로 젖병을 물려야 하는 나 역시 좌절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신생아 집중 치료실이라는 공간은 수유 중 따뜻한 교감이나 낭만을 꿈꾸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곳이었다.


 처음으로 저녁 수유를 하러 간 날이었다. 아이를 안고 준비된 젖병을 들었는데 분유가 너무 차가웠다. "면회 시간에 맞추느라 수유가 늦어져서 분유가 식었나 봐요. 좀 데워 드릴게요." 간호사는 웃으며 젖병을 가져갔지만 내 품에 안겨 수유를 기다리던 아이는 배가 고픈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어찌 달래볼 틈도 없이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못 참겠다는 듯 입을 벌리고 허겁지겁 내 가슴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엄마 젖 냄새를 알아챈 것도, 온몸으로 배고픔을 표현한 것도 지극히 당연한 아이의 본능이겠지만 이 모습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은 내 감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해진 수유 연습 시간을 맞추느라 1시간 가까이 아이의 수유가 늦어진 상황에 대한 불만, 태어난 지 3주가 지나도록 엄마 젖 한번 물어보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 내 아이가 하루 8번 중 6번을 어떻게 먹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번 수유하는 것조차 버거운, 그리고 이 안타까운 상황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경험한 아이와의 동물적 교감은 꽤나 묵직한 내 마음속 감정들을 한꺼번에 끌어올릴 만큼 강렬했다.  

 

 수유 연습은 오전과 저녁 면회 시간에 맞춰 진행되는데 쌍둥이의 경우엔 한 번에 한 명씩 시도한다. 오전 면회 시간에 첫째 아이를 먹이고 저녁 면회 시간에 둘째 아이를 먹이는 식이다. 쌍둥이 엄마니까 열심히(?) 연습을 해서 빨리 수유의 달인이 되라는 주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난 간호사에게 말했다. "저녁 수유 연습은 하지 않을게요. 시간 맞춰 먹여주세요." 빨리 내 수유 실력을 높이는 일이 시급했지만 그렇다고 또다시 배고픈 아이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수유 연습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퇴원 준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퇴원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조건 중 수유 상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그 수유를 책임지는 엄마의 역량도 주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수유는 글로만 배운 초보맘인 데다 아이는 둘, 게다가 이른둥이... 만삭아와 달리 이른둥이는 턱의 힘이 약해 빠는 동작이 미흡하고, 호흡과 빨기의 협응이 잘 안되어 수유 중 호흡 곤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유를 하는 사람, (보통의 경우) 엄마는 아이가 직접 턱을 움직이는 것처럼 적당한 타이밍에 젖꼭지를 살짝씩 밀어 올려 빨기를 도와줘야 하고, 아이가 수유 중 호흡을 잘 못해 코 주변이 파래지면 얼른 젖병을 빼고 호흡을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난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지금 아기 얼굴 파래지는 거 안 보이세요?"라며 젖병을 든 내 손을 잡아 뽑을 때도 "어디요? 어디가 파래졌나요?"라며 어리둥절하고, 1시간 동안 젖병을 들고 고군분투해도 고작 40ml 분유를 다 못 먹이고 일어설 때도 많았다. 특히 둘째 아이는 토를 자주 해서 수유 중간에 몇 차례씩 트림을 시켜야 했는데 그 작은 아이를 두드리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긴 했지만 아무리 안고 두드려도 절대 트림을 하지 않아서 진땀을 빼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뿐. '이 상태로 애 둘을 집에 데려갔다간 하루 종일 아이들이 배고파 울어대는 대참사가 벌어질 거야. 어떻게든 퇴원을 미루자.'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수유는 내게 어렵고도 자신 없는 일이었다.


좌)수유 연습 첫 날, 떨리는 손으로 아이에게 물린 젖병 우)신생아 집중 치료실 입구에 붙어 있던 퇴원 안내. 이른둥이의 퇴원 조건은 체중과 수유량 섭취 가능 여부가 중요하다


연습보단 실전


 불안감에 며칠 동안 밤잠까지 설친 뒤 부랴부랴 산후조리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출산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나 산후조리원에 가서 딱히 할 일도 없었지만 2kg 남짓한 아이 둘을 데리고 도저히 집에선 안 될 것 같았다. 실제로 한 조리원을 예약하기도 했는데 주치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가지 않으면 좋겠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른둥이는 감염에 취약해 혹시라도 바이러스성 장염이라도 걸리면 한 달 동안 어렵게 늘려 놓은 몸무게가 단 며칠 만에 빠질 수 있고, 태어날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간호사의 설명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조리원으로의 도피를 포기했다.


 결국 내가 더 용기를 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두렵다고 더 이상 미루거나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0곳도 넘는 산후도우미 업체에 전화를 걸어 베테랑 중 베테랑 도우미를 섭외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24시간 맥박과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의료장비도 대여했다. 그렇게 내 마음만 빼고 아이들의 퇴원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아이들은 어느새 꿈의 몸무게인 2kg을 넘어섰고, (내가 먹일 때를 제외하면) 수유량도 쭉쭉 늘었으며, 둘째 아이의 잦은 토를 제외하곤 다른 이상 증상도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다 준비되었어요. 하지만 엄마가 준비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니까..." 주치의는 회진 때마다 나를 독려했지만 난 여전히 두려웠다. 결국 퇴원이 가능하다는 날짜보다 며칠을 더 병원에서 보낸 후 아이들은 퇴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 대학병원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두렵고 자신 없어도 그렇게 퇴원을 미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삭아, 단태아를 낳은 다른 초보맘들도 나처럼 똑같이 처음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일 텐데 나는 이른둥이, 쌍둥이라는 상황을 핑계로 내 두려움을 정당화하지 않았나 싶다. 조산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한 명만 낳았다면 그 작은 아이를 처음 집으로 데려가면서 두렵고 떨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거다. 어쨌든 퇴원 후 맞닥뜨린 실전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루 두 번의 면회 시간마다 천사처럼 자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고 우려했던 대로 하루 8번의 쌍둥이 수유는 거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다만 생존의 주체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되었다는 것이 예상과 달랐을 뿐.


 "정말 이 아이들이 퇴원을 해도 괜찮을까요?", "제가 수유 잘 못해서 애들 굶기는 거 아닐까요?" 주치의와 간호사들을 붙들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집에 가면 더 잘 클 거예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할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고작 분유 40ml를 1시간에 걸쳐 먹이고, 또 1시간 가까이 트림을 시키고 돌아서면 곧이어 다음 수유 시간. (짬짬이 모유 유축도 했다.) 심지어 두 아이의 수유 텀이 엇갈릴 땐 꼬박 몇 시간을 먹지도 쉬지도 못한 나와 달리 아이들은 서툰 엄마가 물려주는 젖병에도 생각보다 씩씩하게 적응했다.


하루 8번, 3시간마다 한 번씩 두 아이를 먹이다보면 24시간이 그렇게 짧을 수가 없다.  


 육아 잡지에서 일하며 막연히 '첫 수유'를 상상할 땐 당연히 큰 어려움 없이 모유 수유를 할 줄 알았다. '완모는 기본이지!' 라면서 말이다. 이따금 유명 여배우나 모델들의 아름다운 모유 수유 사진을 볼 때면 나도 비주얼은 다를지언정 사진 속 뭉클한 교감이나 낭만은 다르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 쌍둥이를 임신하고 모유수유는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수차례 들었을 때도 '어쩌면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현실은 내게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도한 모유 수유(직수)에서도 역시 쓴맛만 봤다. 아이들의 몸무게가 3kg을 넘길 때까지 두 달 넘게 유축기에 의지한 모유는 아이들에게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되지 못했고 이미 젖병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괜한 화만 돋우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말이다.

  

 어느새 그로부터 20개월이 지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이기'는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그때는 분유만 타면 준비가 끝났는데 지금은 무려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챙겨야 한다. 매 끼니 다른 국과 반찬으로 밥을 차리고 그마저도 예측불가 취향과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입을 닫아버리는 두 아이와 1시간씩 씨름하는 건 예삿일이다. 양쪽에 아이를 하나씩 앉히고 살살 달래보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고 장난감 놀이도 겸하며 먹이기에 열중하다 보면 얼굴은 땀투성이, 옷은 밥풀 투성이,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아이가 입을 쩍쩍 벌리며 밥을 받아먹거나 양손에 숟가락을 들고 뚝딱 한 그릇 비울 때는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첫 수유는 엄마의 숙명인 '먹이기'의 시작이었다. 힘들면 그만 먹이면 될 것을 왜 나는 번번이 1시간씩 젖병을 들고 있었던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타게 젖병을 물렸던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유식 한 스푼에 옮겨 담아지고, 이후엔 밥 한 숟가락, 국 한 그릇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하고 내 배가 부른 것, 준비 과정에서 아무리 진땀을 쏟아도 잘 먹어준다면 무조건 고맙고 기쁜 것,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일까 매일 고민하게 되는 것, 내 아이의 영혼에 깊이 뿌리내릴 엄마 밥(맘마)의 시작, 어쩌면 그것만으로 첫 수유는 대단히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이제야 그것을 낭만이라 고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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