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 좋아요. 살지 말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빨리 사서 쓰는 게 남는 거라니까요!"
라고, 들이대지 말고 이렇게 해보자.
방백 하듯이. 기지개 켜다가 옆구리 쿡 찌른 척.
한 번도 이것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이것을 사용한 사람은 없다.
내가 이렇게 옆구리 쿡 찌르고 싶은 우리 집 가전 투픽은 제습기와 무선 선풍기인데, 오늘은 무선 선풍기 얘기를 해보려 한다.
원래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놀고먹는 것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무 선생님을 모시기 전엔 이런 세계가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 선 하나 없는 게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다르다, 달라!
정확히 원하는 거리에서 원하는 각도로 바람을 즐기는 것은 전선 길이 때문에 적당히 기계에 맞춰 살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했다. 우리는 어쩌면 생각보다 기계에 맞춰 살고 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편리한 무선 제품들도 끝없는 충전 시중을 들어야 하지만)
그렇게우리 함께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던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무 선생님 모가지가 툭 하고 부러졌다.
(비포) 고개 숙인 무 선생님
알고 보니 이런 디자인으로 나온 것들은 목 부분이 취약해서 머리통을 잡고 옮기면 안 된다고 한다. 머리통을 집어 안방으로 거실로 종횡무진했던 지난 과거가 떠오른다.
직구로 산 거라 수리를 맡기기도 어렵고 해서 대충 각도를 맞춰 걸쳐놓고 쓰기를 며칠. 그나마도 이제 각도가 잘 안 맞춰져고개 숙인 저것을 어쩌지 하고 계속 노려보고만 있었다. 가만히 놔둔다고 자가 치유될 것도 아닌데말이다.
최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습도가 올라가면서 코 앞까지 닥쳐온 여름을 느끼고서야 겨우 움직임을 개시한다. 인터넷을 뒤져 사설 업체를 찾았지만 분해해서, 포장한 후, 택배를 보내고, 다시 받아 조립할 것, 을 생각하니 또다시 귀차니즘이 몰려온다. 그냥 새 걸로 사고 싶은 마음이 자꾸 불쑥불쑥 디민다.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돈은 정말 최고야! 짜릿해!
하지만 환경과 수중의 돈을 생각하자. 야무지게 고쳐 써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여기까지 쓰고 집 주변 수리업체를 수소문하다가마땅한 곳이 없어 이전에 찾은 사설업체에 택배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택배를 보내기 위해 요청사항대로 연결부를 분리하고 있는데 소파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쓰윽 와서 "택배 보내기도 귀찮은데 그냥 내가 고쳐볼까" 한다.
공대생 남편은 뚝딱! 수리를 해냈
으면 좋았겠지만, 뚝딱뚝딱, 뚝딱뚝딱, 뚝딱뚝딱 뚝딱뚝딱 뚝딱뚝딱 뚝딱뚝딱...
나사란 나사는 다 분해했고 그리하여 제품보다는 부품에 가까운 상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주의! 어린이나 노약자는 따라하지 마시오 ^_ㅠ
어릴 적 과학상자 만드는 기분이라며 들뜬 남편 덕에 뜻밖의 험난한 여정에 발을 들여버린 것이다.
사실 여즉 공대생 유전자를 못 버린 나도 신이 나서 그만 이성을 놓고 남편을 보조한 것은 비밀이다.
부러진 부품을 뭐로 고정해 수리할까 하다 어릴 적 TV 홈쇼핑에서 본 믹스앤픽스가 생각이 났다. 요래조래 틈에 넣고 끼우고 하면 고정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다이소로 달려가 믹스앤픽스 비스무리한 것을 얼른 사 왔다. 계획한 대로 남편과 수리를 마치고 24시간 경화를 시킨 후 분해한 역순으로 하나하나 조립해 나갔다.
마침내 수리 완료!
과연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애프터) 위풍당당 무 선생님
원래 구조대로 지탱되어 있는가? Yes.
켜고 끄는 작동이 되는가? Yes.
회전까지 제대로 되는가? 두구두구두구두구- Yes!
잠시 쫄깃한 긴장감을 느끼고, 걱정했던 회전 기능까지 정상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오랜만에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새로 샀다면 15만 원, 수리를 맡겼어도 5만 원 돈이 들었을 것을 다이소 표 믹스앤픽스로 2천 원에 해결했다.즐거운 조립 시간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