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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m Jun 09. 2023

코로나 후유증

아무 냄새가 안 나는데요.


2020년부터 만 3년이 넘게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유월의 첫날을 코로나 확진으로 맞이하고, 침대에서 골골거리고 나니 벌써 6월이 훌쩍 지나있다.

일주일에 두 번은 글을 올려야지 다짐했는데 일주일간 글을 못 올려서 기다리는 이는 없지만 나 혼자 괜히 작은 죄책감을 느꼈다.


잠을 못 자서인지 코로나 확진 후에 내내 누워있던 습관 때문인지 12시가 넘었는데도 몸이 천근만근이다. 내내 침대에 누워 잠만 자고 유튜브 영상만 봤더니 아무 생각이 안 난다. 그래도 일단 자리에 앉아 뭐라도 써봐야지.


그래, 코로나 얘기를 해보자.

확진 첫째 날과 둘째 날엔 아무렇지 않았다. 셋째 날이 되자 갑자기 두들겨 맞은 듯 몸이 아팠다.

열은 39도를 찍고, 추운데 덥고 더운데 추웠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다리엔 찜질팩을 끼고 머리엔 얼음팩을 얹고 누워있어야 했다. 그렇게 이틀을 더 앓고 나니 몸이 좀 나아졌다.

이제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뭘 먹어도 맛이 없었다. 아파서 드디어 입맛이 없나?


화장실에 갔더니 윗집에서 락스를 엄청나게 퍼붓고 청소를 했는지 수영장처럼 락스 냄새가 진동했다.

어휴, 민폐 이웃이네. 거실을 가도 어느 방을 가도 냄새가 따라다녔다. 이 정도면 윗집에 뭔 일이 난 거 아냐? 무시무시한 사건이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는 시국인지라 별생각이 다 든다. 남편에게 "집에서 락스 냄새가 너무 많이 나지 않아?" 하니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한다. 아 맞다. 우리 남편, 비염이지?


독한 냄새에 머리도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산책을 나섰다. 아직도 코끝에 락스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해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는데 들숨 끝에 여전히 락스 냄새가 난다. 어, 이게 뭐지? 그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 이거 코로나 후유증이구나!


코로나 걸린 후에 후각 이상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까 나의 증상은...


1) 이상한 냄새를 맡다가 점점 아무 냄새도 못 맡고 있다.

후각이상 후유증 초기엔 내내 락스 냄새가 났다. 숨을 들이마시면 콧속에 락스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락스로 청소할 때 나는 냄새가 계속 났다. 이 냄새 때문에 입맛도 없고 헛구역질에 계속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기를 이틀, 이제는 냄새를 아예 못 맡는다. 살냄새도 향수 냄새도 방구 냄새도 제대로 못 맡는다. 체감되는 가장 큰 문제는 음식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인데, 냉장고에 남은 김치찜을 데우는데 상했는지 괜찮은 건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바글바글 끓여 먹었다. 가스 불을 켜는데 가스가 새도 지금의 나는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문득 무서워졌다. 내 생각보다 후각이 훨씬 안전과 연관되어 있구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찜 냄새를 맡을 수가 없는 건 꽤 슬프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후각과 함께 삶의 작은 기쁨들이 옅어졌다.


2) 당연한 얘기지만 냄새가 안 나니 맛이 잘 안 느껴진다.

느낌도 나고 단 느낌도 는데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수박을 먹으면 단 것 같고 김치를 먹으면 짠 것 같다. 정확한 맛은 못 느낀다. 음식 맛이 안 나니 대충 먹고 싶어진다. 어차피 이거 먹으나 저거 먹으나 대충 식감만 느끼는데 뭣 하러 맛난 거 먹나 싶다. 대충 맛있었던 기억으로 맛을 회상하며 먹는 기분을 아시려나? 밀키스를 마시는데 제대로 맛은 안 나고 달달한 탄산이구나 하는 생각만으로 삼켜내니 기분이 나쁘다. 기쁘지가 않다. 행복할 수 없다.


3) 코가 괴로운 감정이 든다.

수영장에서 코로 물 마셨을 때의 느낌이 계속 난다. 매운 냄새를 계속 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코가 시큰한 느낌이다. 문제는 이게 진짜 아픈 건지 '아픈 느낌'이 드는 건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코가 괴로운 감정이다. 지금 내 코는 몹시 괴롭다. 코가 시큰하니 어쩐지 눈도 무겁다. 그래서 자꾸 누워있고 싶은가 보다.


이런 후각이상 후유증은 짧게는 일, 이주, 길게는 몇 달이 지나야 사라진다고 한다.

이대로 후각이 영영 안 돌아 올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MBTI의 N 성향답게 여생을 후각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까지 상상하고 돌아온다. 어렸을 때부터 '시각, 청각, 후각 중에 하나를 잃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히 후각이지' 생각했지만 막상 잃어보니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흑흑


하나~도 잃고 싶지가 않애~




                                  * Cover Imag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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