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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m Jun 27. 2023

헤드헌터님, 제 프로필 눌러는 봤나요?

무지, 무례, 무책임 그 사이 어딘가


지난주에 황당한 일이 있었다.


월요일 오후.

지메일에 링크드인에서 보낸 일촌 신청 메일이 와 있어 수락을 눌렀다.

나의 다른 SNS 계정과 마찬가지로 내 링크드인 계정도 거의 방치 상태인데 헤드헌터끼리 건너 건너 계속 연결되어 일촌 추천이 되는지 자꾸만 헤드헌팅 회사 사람들이 일촌 신청을 보내왔다. 이미 몇 명의 일촌이 등록되어 있는 한 외국계 헤드헌팅 회사 소속 직원이어서 수락을 누르고 오랜만에 링크드인을 둘러보고 있는데 방금 일촌으로 등록한 그분에게서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첫인사와 함께 이직 의사가 있냐는 질문이었다.

사실 당장 이직을 알아보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마침 커리어 고민도 많던 차라 어떤 자리가 오픈되어 있는지, 요즘 채용시장에서 요구하는 자리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직을 적극 알아보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니 내가 근무했던 분야의 한 외국계 회사 포지션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왔다. 일단 상세내용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을 정중한 표현으로 에둘러 답했다. 그녀는 물론 가능하다며 Job Description을 보내왔다.


어떤 사람을 구하나 하고 조금 들뜬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봤더니 맨 첫 줄에 이미 '2~3 years of experience in OO area.'라고 적혀있었다. 황당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내 프로필에는 3개의 회사에서 총 9년이 넘게 근무한 경력이 적혀있다. 그런데도 나에게 2~3년 연차의 포지션, 일반적으로 채 대리도 달기 전인 평사원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이쯤 되니 나는 이 사람이 내 프로필을 눌러보기나 했는지 궁금해졌다.

헤드헌터와의 메시지 창으로 돌아와 구인 경력과 내 경력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경력에 따라 직급 조정이 되는 자리인지 물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상대방이 메시지를 확인했음을 나타내는 V자 표시가 곧바로 내 메시지 옆에 달렸다. 그때까지 계속 칼답을 하던 그녀는 V자 표시가 생기고도 1시간이 넘고, 6시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예상대로 그녀의 답변은 며칠이 지나도록 들을 수 없었다.


헤드헌터는 회사에는 뛰어난 인재를 발굴해서 적재적소에 제안하고, 개인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있는 양질의 회사와 자리를 제안해서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책임감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그저 수집하듯 모으고, 경력 따윈 무시하고 일단 들이밀어보는 행위는 무책임하다. 그녀의 행동은 무지보다는 무례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 개인에게도, 그녀가 속한 회사에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헤드헌팅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진 것이다. 그녀의 프로필을 보니 해당 회사에서 근무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녀는 그 회사 이름을 달고 나와 대화했으니 적어도 나에겐 그 회사를 대표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JD 몇 건 보내기'를 혼자 그 주의 목표로 잡은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 겪고 싶지는 다.





일주일 후, 그녀에게서 뒤늦은 답장이 왔다.

예상대로 월요일마다 미션 수행 중인 걸까?


해당 회사에 문의하니 내 경력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며 지원하시겠냐고 묻는다.

'괜찮을 것 같다'는 건 뭘까? 2~3년 경력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내 경력을 전부 인정해 주고 포지션을 맞춰주겠다는 것인지, 2~3년 경력직 자리에 나를 끼워 넣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전자의 경우 회사 입장에서 손해다. 후자의 경우 내 입장에서 손해다.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일 처리가 이럴 진데 계속 이 헤드헌터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사람한테 내 커리어를 맡길 순 없지.


실망, 분노 같은 감정을 내려놓고 최대한 사무적으로 답변을 수정, 또 수정했다.

내 경력 기간과 매칭되는 포지션은 아닌 것 같다고 거절하는 답변을 보내니 감동스럽게도 또 읽씹이다.

고오맙다. 내 선택에 확신을 줘서.


슨생님, 제발 우리 책임감 있게 일합시다.

쫌!




                                       *Cover Imag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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