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든 생각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그랗고 표면이 고른 양송이버섯을 찾으려고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같은 가격이라면 가장 신선한 것으로 고르고 싶었다.
작년에 500평 밭에 고구마 농사를 지으면서 못난이 농산물을 수확할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을 경험해봤으면서도, 마트에서 나는 여전히 못난이 농산물을 외면하는 소비자였다.
오늘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봄에 땅을 일굴 때 '일 년 농사 잘 지어서 시장에 자신 있게 선보이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고구마를 수확하는 날까지숱한 마음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4월엔 때늦은 한파로 냉해 피해를 입었다는 농가 소식에 풀이 죽기도 했고, 여름엔 몇 주동안이나 이어지는 장마에 집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한파, 태풍, 장마.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구마 수확철이 왔다. 고구마는 잘 자라고 있는지, 땅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첫 농산물 수확에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비장한 마음으로 밭으로 갔다. 고구마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고구마에게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알아서 잘 자라주어 기특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냉정한 기준으로 고구마를 선별해야 했다. 동그랗고 상처가 없는, 그리고 적당한 크기. 여기서 '적당한 크기'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엔 에어 프라이기를 사용하는 가정이 늘면서, 에어 프라이기 사이즈에 잘 맞는 100~300g의 고구마가 최상의 등급으로 팔린다.
수확하는 기계에 긁혀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고구마, 팔뚝만 한 고구마, 기다란 고구마, 한입 사이즈의 고구마. 결국 생김새가 비슷한 고구마끼리 각자의 바구니에 자리 잡았다.
선별 작업을 끝내고 보니, 시장에 팔 수 있는 양질의 고구마가 얼마 없었다. 결국 수익을 포기하고 귀농에 도움을 준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첫 농사를 마무리했다. 마트 진열대에 오르기까지 농산물은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오른다. 땅 속에서는 하늘의 뜻을, 세상에 나와서는 시장의 기준으로 선택받기를 기다린다. 고달픈 운명이다.
최근에는 '맛남의 광장' 덕분에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겉모습만 다를 뿐, 맛과 영양은 동일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한다.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함으로써 우리는 실속 있는 소비, 더불어 농가를 살리고, 산지 폐기를 줄이는 윤리적 소비에 동참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면서도, 생산자로서 내가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본의 Kodawarin은 못난이 채소로 퓨레를 만들어 팔며, JINRI는 지역 농가의 못난이 채소로 피클을 생산, 판매하여, 2016 굿디자인 어워드의 '사회공헌 부문'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못난이 농산물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 그리고 못난이 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다고 해서 품질이나 신선도와 타협하는 것이 아님을 항상 유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