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담 Jan 06. 2021

잘 먹는 것이란 무엇일까

집밥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단어다. 엄마의 마음은 갓 지은 밥의 온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게다가 고기반찬에 고깃국이라니. 나와 내 동생이 각자의 집으로 떠나고 난 뒤 고향집에 남은 아빠 엄마의 식탁엔 김치와 나물 반찬 몇 가지가 전부라고 했는데... 내가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집밥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심지어 학교를 안 가는 일요일에도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었다. 밥보다 잠이 더 좋았던 시절이었기에 투덜대면서 식탁에 앉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나의 아침밥 풍경은 서서히 사라졌다. 신정, 설날, 추석. 고향집에서 집밥을 먹는 1년에 몇 안 되는 날이다. 엄마는 부엌일을 하다가도 내가 밥 먹을 때면 옆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다. 나는 친구들 소식, 회사 일 등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밥 한 그릇을 단숨에 먹어 치우곤 다. 이상하게도 고향집에서는 없던 입맛이 생긴다. “엄마, 나 배 별로 안 고프니까 밥 조금만 줘”라고 얘기해도 엄마는 항상 고봉밥을 퍼주었다. 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 먹을 거라는 걸 엄마는 안다.


베체트 증상으로 내가 병원에 다녔던 그 이후로 엄마는 서른 살이 넘은 딸 걱정에 격주로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다. 학교도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했지만, 먹는 것만큼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학창 시절 때나 지금이나 엄마의 식탁에는 사계절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제철 식재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계절의 변화가 충실히 느껴진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처음 땅을 뚫고 올라온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몸에 좋다고 전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추를 먹으며 봄맞이 준비를 했고, 여름에는 오이냉국 덕분에 더위로 가신 입맛을 되찾았다.


어느덧 마지막 계절 겨울을 보내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추위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겨울을 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음식 덕분이다. 창문 밖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쓸쓸한 겨울 풍경뿐이지만, 방 안에서 포슬포슬한 밤고구마와 우유, 그리고 새콤달콤한 귤을 먹으며 겨울을 무탈하게 보내고 있다. 이보다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나는 엄마의 집밥을 통해 잘 먹는 것이란 마음을 채우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음식을 마음으로 느낄 줄 아는 나는 이미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매거진의 이전글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