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2개, 탕수육 1개, xxx 아파트로 갖다 주세요.” 전화로 배달음식을 시키는 과거의 방식도 편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터치 몇 번이면 일식, 양식, 한식, 디저트까지 단숨에 우리 집 식탁에 차려진다.
배달음식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장 보고, 재료 손질하고, 요리하는 시간을 아껴 자신을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낸다. 자기 계발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온전한 휴식을 취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배달음식을 즐겨 먹지 않는다. 배달음식으로 인해 얻는 것보다 희생해야 하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건강이다. 배달음식은 맛있다. 맵고 짜고 달기 때문인데, 배달음식은 나의 입맛을 빠르게 길들일 것이다. 몸에서 보내는 건강 적신호를 경험한 이후 습관이 생겼다. ‘음식이 내 몸으로 들어갈 때 영양학적으로 순기능을 할지’부터 생각하게 됐다. 배달음식은 영양이 아닌 칼로리만 있을 뿐.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에 자연스레 거부감이 든다.
두 번째로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음식점에서 정한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려면 1인분보다 더 많이 시켜야 할 때가 있다. 여기에 배달비를더하면, 평균 만 오천 원 정도 지불해야 한다. 월급쟁이에게 만 오천 원짜리 한 끼 식사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배달음식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나의 입맛뿐만 아니라 지갑까지 위협할지도 모른다.
배달음식으로 희생되는 세 번째는 환경오염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소비로 전환되면서 배달음식 서비스 이용량이 많아졌고, 이는 플라스틱 폐기물 급증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아무리 재활용한다고 해도 처리할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다. 이런 추세로 매일 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온다면, 플라스틱 수거 업체에서 수거를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플라스틱 사용자인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배달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원재료가 수확되는 과정,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떡볶이에 들어가는 고추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PLS(농약 허용기준 강화제도) 기준치 내에서 농약이 사용됐는지, 고추 건조 환경은 청결했는지 등.
이를 공개하는 건 판매자의 몫이다. 하지만 소비자도 이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는 것 같다. 바깥에서 먹고사는 일로 기력을 소진하다 보니, 집으로 돌아와서는 배를 채우는 일에 그리 힘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그랬다.
집밥 예찬론자로서 감히 제안해본다.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집에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보는 건 어떨까?음식은 우리를 위로하는 힘이 있다.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집밥을 그리워했던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집밥은 언제든지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구수한 밥 냄새로 아침잠에서 깨어본 기억, 정성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준 혹은 받아본 기억은 일상을 헤쳐나가는 힘이 된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동안 집밥에 대한 기억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마음의 에너지도 함께 채워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