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곳
어서 오라며, 밥은 먹었느냐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엄마 아빠가 있는 곳, 목이 쉬도록 왕왕 짖어대는 나의 작은 친구가 있는 곳, 언제나 먹을 게 넘쳐나는 냉장고가 있는 곳, 온 바닥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곳, 그러나 베란다를 터버려 유일하게 추운 내방이 있는 곳. 이 모든 것은 내가 살던 서울의 한 풍경들이다. 곱씹어 보면, 분명히 정겨운 곳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곳에 없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복도처럼 좁고 긴 주방을 따라 방으로 향할 때 약간의 단차가 있는 곳, 건물 끝 집이라 창이 두 개 나 있고 그 덕에 해가 잘 드는 밝은 곳, 전철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 적적함을 달랠 수 있는 곳, 주방엔 화구가 두 개라 볶음요리와 국물요리를 동시에 조리할 수 있는 곳. 따사롭고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 곳들. 그리고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어느 곳도 내가 정붙이고 산 집들이지만, 그럼에도 나다운 집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건 홀로서기 2년차인 나와 함께 세월을 보내준 하시모토의 야림집 일 것이다. 주방세제를 고르는 일도, 세탁을 돌릴 때를 결정하는 일도, 오늘 사용할 식기를 고르는 일도, 잠드는 시간을 정하는 일도 오롯이 혼자서 해내야하는 야림집에서의 생활, 하루하루가 새롭고 하루하루가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