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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07. 2023

고여사의 일기

배설

   삶을 압축하자면 먹고 싸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이것들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동물이라면 어떤 종을 막론하고 행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먹는 일에 비해 싸는 일, 배설은 치부에 해당된다. 짐승들의 배설은 그들의 또 다른 생존과 연결되므로 비밀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위험성을 갖지 않은 인간들에게도 배설은 비밀스럽다. 먹는 일이 사는 일이라면 싸는 일도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이지만 먹는 것과는 반대의 취급을 받는다. 


  먹는 것은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게다가 혼자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형태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먹는 것을 즐긴다. 그 행위는 자못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더 많은 양을,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차린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누군가를 대접하는 것 중에 음식 대접이 으뜸이었다. 


  그에 비해 배설행위는 비밀스럽다. 더 자주, 더 많이 싸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치부되었다. 배설의 공간을 ‘뒷간’이라 불렀다. 주거공간의 가장 뒤쪽,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공간에 마련했다. 뒷간 가는 일을 자랑하는 사람은 없다. 은밀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배설한다. 짐승들처럼 약점을 잡혀 생명을 위태롭게 할 일도 없는데도 말이다. 


  자리를 보전하고 누운 엄마는 먹는 일에 소홀하다. 먹지 않아 애를 태우는 딸의 안타까움에도 당당하다. 오첩반상, 칠첩반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할 것인가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반면에 배설은 부끄럽다.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여도 배설을 은밀히 해결하지 못하는 일에 미안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소변을 기저귀로 처리하면서도 대변만큼은 그 상황이 되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어디 사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자꾸만 흐르는 시간과 먹는 것이 부실한 엄마의 근육은 점점 사라지고, 배설을 하는 최소한의 기력도 쇠하고 말았다. 엄마는 울부짖었다. 누워서는 아래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되지 않는지. 위생장갑을 끼고 배설을 도우려는 내게 고개를 젓고 비명을 지른다.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은 나도 당황스럽다. 


  성공하지 못한 배설에 엄마도, 나도 지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온 집안이 대변 냄새로 가득하다. 양쪽으로 창을 열어 환기를 한다. 엄마의 신음과 나의 한숨이 앞을 다투어 방을 빠져나간다. 이제 시작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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