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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05. 2023

나의 일기

비 오는 아침의 풍경

  피곤한 몸을 일으키니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네요. 간밤에 몰려든 구름들이 가뭄에 마른 대지를 적십니다. 어떤 곳에는 걱정할 만큼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아직 해갈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세상은 늘 공평하지는 않나봅니다. 공평하지 못한 여건을 공평하게 만드는 일이 인간의 몫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제는 남편과 함께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보호자 동행이 꼭 필요하대서 고역 같은 서울행을 하게 되었네요. 수술 후 배액관이 막혀 스텐트 삽입했던 걸 제거했어요. 수면마취 때문에 보호자 없이 퇴원이 안 된다더라고요. 그럴 만도 한 게, 마취에서 깬 남편은 횡설수설하며 다리가 풀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어요. 그런 상태로 병원을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 한 일이겠지요. 


  어머니들 때문에 동생 찬스를 썼습니다. 복숭아 접과에 바쁜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급해서 손을 내밀 때마다 잡아주어 늘 고맙지요. 어제는 막냇동생도 함께 거들어 시간을 나누었네요. 어버이날이 가까워 카네이션 조화를 꽂은 스투키 화분을 엄마 방에 두고 갔네요. 아래로 줄줄이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유년의 고충이 지금에 와서 빛을 봅니다.(농담)


  시어머니는 사돈댁 동생들에게서 밥상을 받아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불러도 다신 오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다고 하네요. 사실 핑계를 찾지 못해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았어요. 이 핑계 저 핑계 돌아가면서 댔는데, 자리를 비우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그냥 가버렸지요. 다녀오는 동안 시나리오를 만들려고 했는데 아침 식사를 끝낸 지금까지 묻지 않으시네요. 


  이물질을 제거한 남편은 수술 후 처음으로 가벼운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이었고, 그 덕분에 소화가 원활했지만 미묘한 통증과 불편함은 늘 따라 다녔다고 하네요. 다들 아시죠? 속이 거북하면 삶의 질이 얼마나 저하되는지. 목숨이 걸린 문제라 마지못해 받아들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불편함을 온전히 수긍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연휴로 이어지는 하행선이 군데군데 막혀 귀가는 생각보다 늦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 아침은 포근합니다. 아침 일과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베란다에 줄지은 제라늄들의 초록이 싱그럽네요. 삽목에 성공한 제라늄 한 포기가 밀어올린 꽃대가 대견합니다. 잘린 가지에 뿌리를 내리고 꽃대를 낸 장한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분홍빛 꽃봉오리가 수줍게 미소를 짓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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