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May 01. 2023

나의 일기

오월의 단상



  조용한 하루다. 근로자의 날이라 시간에 맞춰 태그 할 필요도 없다. 화창한 오월의 첫 하늘은 오후가 되자 살짝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태양빛이 더 밝게 혹은 구름에 살짝 가린 상태를 반복적으로 나타낸다. 그래도 오월은 사월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준다. 하늘빛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들도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 점심 식사를 챙길 때,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아픈 것 아니냐고 말을 걸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냥’이란다. 말을 걸고 싶었던 모양이다. 다른 말도 많을 텐데... 낯빛을 확인했다. 주말동안 연이어 결혼식에 다녀오느라 피곤했던 것이 표시가 난 것일까? 수북한 당신의 약상자를 내밀며 골라서 먹으란다. 치매 예방약이라도 하나 먹을까? 


  불쑥 억울한 느낌이 올라올 때도 있다. 내게 이런 선택의 순간을 던지는 신의 요구는 무엇일까? 나는 왜 보다 편한 방법을 선택하지 못한 것일까? 연휴를 맞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안부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어머니들에 이어 남편까지 가세를 하자 한동안 우울했다. 얼마간이 아니라 나머지 인생을 전부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아름다고 행복한 삶을 누구나 원한다.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을 연마한다. 그러나 삶은 녹록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 노력의 대가는 원하는 삶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보다 성공적으로 버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다. 물론 그 끝이 행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원하는 삶을 성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 내 삶이 애초에 이렇게 꾸려지도록 설정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흘린 적도 있다. 늘 힘겹게 버티고 넘어가야만 하는 삶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신의 심술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고민한 적도 있다. 글쎄다.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삶을 거부하는 것이 신과의 대립에서 패배하는 것이라 오기도 품었었다. 


  이순(耳順)에 가까워진다. 오기를 품은 칼날도 무디어지고, 보이지 않는 심술에 대항하는 마음도 수그러들었다. 그래봐야 힘만 빠진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사람마다 주어지는 삶은 다른 형태를 가진다. 꼭 같다면 긴 인생사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아마도 이런 삶이 내 몫인 양 수긍함이 옳으리라.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냥 피하지 않고 버틸 것이다.


  그래, 그래봐라. 그래도 틈틈이 내가 하고픈 걸 하고 말거다. 그게 나의 인생 제 2막이다.


작가의 이전글 고여사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