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Apr 30. 2023

고여사의 일기

이별을 생각하다

  엄마가 대변을 본 지 스무 날 째다. 중간 중간에 변의가 없는지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나로서는 밤중에 볼 일을 볼까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다. 변을 보았는데 제 때 기저귀를 갈지 못하면 생길 불상사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끔직하다. 


  적당한 때에 관장하기로 약속했지만 엄마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랬는데 갑자기 변기에 앉혀달란다. 일어나 앉는 것도 힘들어하는 터라 그냥 누워서 기저귀에 보기를 권했다. 내 권유에 반응할 생각도 없다. 앙다문 입술이 완고하다. 


  겨드랑이 밑으로 두 팔을 넣어 들어 올리면 당신 스스로 바지와 속옷을 내려야 하는데 이젠 그마저도 하지 못한다. 두 팔은 모두 엄마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바지를 내릴 여유가 없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난감함을. 


  한쪽으로 힘을 싣고 간신히 바지를 내렸다. 겨우 앉혔는데 이번엔 엄마의 표정이 수상하다. 눈물을 찔끔 흘리더니 온몸이 축 처진다. 무너져 내린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게다. 급히 부축을 해보지만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까무룩 정신마저 혼미한 듯하다. 이마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힘을 주어 엄마를 들추고 침대위에 뉘였다. 물에서 끌어올려 모래사장에 던져놓은 해파리 같다. 얼굴도 차갑게 식고 손과 발도 차갑다. 119를 떠올리며 전화기를 찾았다. 흘러내린 속옷을 단속하는데 가늘게 숨소리가 들린다. 얼굴을 쓰다듬으며 엄마를 불렀다.


  정신이 들었는지 말을 한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 변의마저 사라졌다. 힘드니까 기저귀에 볼일을 보자고, 흉이 아니라고 다독였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가 놀란 것 이상으로 당신도 놀랬으리라. 얼굴과 손에 다시 온기가 돈다. 


  동생들은 엄마가 올해를 넘길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별의 아쉬움은 생각보다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고 배설하는 일도 버거운 삶은 어떨까? 오늘은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생각이 길어진다. 오늘 또 하루는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최여사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