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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9. 2023

최여사의 일기

상사병

  세상 다 잃은 표정이다. 밥상을 받고도 일그러진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싫어하는 음식을 마지못해 먹는 모습이다. 어제 오후 목욕을 하다 엎어졌었는데 그 일로 아픈 것은 아닌지 여쭈었다. 그건 아니라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다. 가만 보니 또 상사병이 도졌다. 


  남편의 체중이 10킬로그램이나 줄어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지라 통화만 하고 대면하는 것을 피했는데 이젠 전화통화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확인하니 어제저녁 통화에 본 지 오래되었다며 울먹였단다. 지독한 사랑이다. 멀리 돈 벌러 갔다는 말로 둘러댔는데 늙은 아들 돈벌이 보냈다며 또 며느리를 원망한다. 


  종일 집안에만 있어 갑갑할까봐 산책을 권해도 거부하고, 함께 그림이라도 그리자며 과일이나 꽃 도안을 내밀어도 콧방귀를 뀐다. 나물을 다듬거나 콩을 고르는 것은 농사일이라고 거들어 함께 하지만 다른 소일거리나 취미생활엔 고개를 돌린다. 그런 부분은 아무 소득도 없이 왜 산에 오르느냐며 등산을 폄하하는 남편과 꼭 닮았다. 


  좋아하는 믹스커피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했지만 커피만 다 마시고는 다시 찌그린 표정으로 드러눕는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외할아버지 이야기며 친정 조카들 뒷담화라도 늘어놓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앉을 지도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나의 성격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너무 피곤하다. 부모를 부양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원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함께 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들 부양에는 타인 뒷담화를 들어주는 일이 전공과목이다. 


  전화로 아들 목소리를 듣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기어이 얼굴 보기 전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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