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니 자주 눈물이 난다
구미에 사는 시동생 내외가 다녀갔다. 망고주스 한 박스를 들고 어버이날을 축하하러 온 것이다. 내게는 질렸다면 그만 사라고 했던 망고주스. 어머니는 둘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것을 사오지 않는다며 한 소리를 했다 한다. 질렸어도 매번 주던 것을 끊으니 섭섭했을까? 아니면 질렸다는 말이 거짓말이었을까?
어머니는 둘째 아들과 며느리를 눈물바람으로 맞았다. 아이고, 하는 감탄사로 연신 울먹이는데 이건 뭐 이산가족 상봉 수준이다. 언뜻, 내가 구박해서 서러웠다는 오해를 살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둘째 아들 손을 잡고 큰 아들의 생사를 걱정한다. 그제 통화를 했건만 목소리는 믿지 못하겠단다. 이런, 며느리가 아들을 어찌하기라도 한 걸로 생각하는 걸까.
아침 식사가 늦어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말에 다시 눈물을 글썽인다. 울음을 삼킨다. 어머니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애들 밥 좀 주면 안 되겠나.” 생각 없다고 손사래 치는 그들에게 약간의 간식을 내어 먹는 척이라도 하라고 했다. 먹는 것을 경계하는 세대와 먹는 것이 전부인 세대가 만나면 늘 생겨나는 일이다.
“어머니, 예전에 애들 키울 때 맨날 우는 애와 방긋거리고 웃는 애 중에 누가 더 예뻤어요?” 내 물음에 “웃는 애지.” 정답을 말했다. 누군가 어머니를 뵈러 왔을 때 웃는 얼굴로 반갑다 손잡아주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가 애가.” 시큰둥한 대답 끝에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 했다.
왜 자주 찾아오지 않았느냐. 누구는 어찌 지내는지 안부는 챙기느냐. 밥은 먹고 다니느냐. 위험한 취미생활은 아직도 하고 있느냐. 어머니의 반가움은 채근에 가깝다. 하는 말로는 전혀 반갑지 않아 보인다.
시동생 내외가 돌아가고 시어머니는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다. 화장실로 기어가면서도 전화기를 챙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사이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올까봐서란다. 결국 오는 전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2번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