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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l 14. 2023

최여사의 일기

아흔 둘의 밉상

“니가 밥을 안 주면 어떨노?‘

긴 한숨 끝에 나온 말이다.


  수술과 회복의 시간을 보내느라 돌보지 못한 밭에는 풀이 무성하다. 가지치기를 할 때가 된 가죽나무도 한 길은 더 자랐다. 그야말로 정글 숲을 연상케 한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남편은 도저히 미룰 수가 없었던지 풀베기에 나섰다. 


  장마철이라 뜨거운 태양은 피했지만 그 대신 습기가 가득한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새벽4시에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든 남편에게서 비장미가 느껴진다.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더위 속에서 예초기를 메고 천팔백 평을 돌아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일 것이다. 해마다 해 오던 일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지 않는가. 보통 때도 사흘은 족히 걸린 일이니 올해는 더 길게 잡아야 할 터이다.


  아침식사를 차려드렸더니 제일 먼저 아들의 안부를 묻는다. 왜 보이지 않느냐, 어디가 아픈 게냐, 걱정이 한가득 섞인 질문에 밭에 풀 베러 갔다고 전했다. 숟가락을 드는 손에 힘이 없다. 그렇잖아도 행동이 느린 어머니는 한숨까지 더하며 중간 중간 나를 쳐다본다.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한다. 심중을 가늠한다 싶으면 어머니의 엄살은 더 심해진다는 것을 아니까.


  잔뜩 흐린 하늘을 보다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하고는 집을 나섰다. 평생학습관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도 아침 운동은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할머니가 엄마 집 나갔다고, 어디 간 거냐고 물으시네?’ 잠이 덜 깬 딸아이의 전화다. 또 시작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걱정이 되는 증상의 발현이다. 아침 밥상에 나타나지 않는 아들, 일찌감치 집을 나선 며느리가 무슨 짓을 하는 지 걱정이 한가득 일 것이다. 


  “새벽부터 일하러 나갔다니 가슴이 무너진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내게 어머니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지아비는 새벽부터 밭에 나갔는데 너는 어디를 싸돌아 다니냐는 말이다. 예전에 시골서 농사지으실 때 무더운 여름날엔 해 달아오르기 전 새벽에 일 나가지 않았냐고. 하루 종일 어머니 눈앞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걱정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원래대로면 모두 돈 벌러 나가고 혼자 계셔야 할 텐데 그나마 사정이 있어 늘 함께 하지 않느냐. 풀 베러 며칠 새벽에 나가는 것이 뭐가 그리 가슴이 아프냐고 역정을 냈다. 


  “내가 죽어야 겠제?” 한숨 유발하는 두 번째 발언이다. “네, 어머니 돌아가셔야 그 걱정이 끝나겠네요.” 보는 것마다 걱정이고 걱정되는 것 마다 며느리한테 엄살을 피워대니 참 힘들다 했더니 세 번째 문제의 발언으로 이어진다. “니가 밥을 안 주면 어떨노? 그러면 굶어서 죽지 않을라?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방법이 그거밖에 없네.” 헛웃음이 나온다. “안 드시면 될 것을 시어머니 굶겨 죽인 며느리 만들 참이세요?” 이어지는 말은 명언이다. “눈앞에 먹을 것 두고 어찌 참누. 니가 안 줘야 못 먹지.”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리는 소리다.


  아흔 둘 연세에도 하루 세끼 밥 한 공기씩 뚝딱이다. 면 요리를 좋아해서 국수는 냉면기 가득, 라면은 한 봉지 깨끗이 비운다. 간식으로 떡이든 과일이든 드리는 순간 클리어! 음식을 미뤄두는 일은 웬만해선 없다. 그러다보니 가끔 과식으로 배탈이 나는데 그때는 미련 없이 끼니를 거른다. 배탈엔 굶는 것이 약이라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즈음 보름동안 전혀 드시지 못했다. 밥에서 죽으로 미음으로, 혹은 좋아하는 간식으로 입맛을 돋우려 해도 고개를 저었다. 그때 얼마나 애간장이 탔던지 밥상을 하얗게 비우는 시어머니의 먹성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먹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특별식까지 모두 시어머니 몫으로 돌아갔다. 잘 먹는 것은 먹는 사람도, 음식을 준비한 사람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음식 하는 사람은 먹어서 없어지는 게 아깝지 않다. 그저 기쁠 뿐이다.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보면 또 다른 음식을 만들 마음이 생긴다. 


  가끔 역지사지로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본다. 그 속내까지야 어찌 제대로 파악할까마는 남은 삶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은 흐릿하고 귀는 점점 먹어 들리지 않는다. 정신도 가뭇가뭇하고 걸음걸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주는 음식 먹고 힘들게 화장실 찾아가는 것이 유일한 일상이 된다. 티브이도 심드렁하고 식구들은 죄다 바쁘다. 설사 함께 있다 해도 아주 잠깐의 대화가 전부다. 종일 손잡고 바라보고 싶은 아들은 밥 먹을 때나 함께하는데 그나마도 따로 밥상을 받는다. 식탁도 두레상도 버거워 낮은 찻상에서나 식사가 가능하니 어쩔 수가 없다. 참 갑갑한 노릇이다.


  말은 다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먹은 대로 뱉을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여과 없이 쏟아진다. 듣는 상대가 없을 땐 혼자 중얼거린다. 아들에게는 눈치가 보이지만 며느리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는 대상이다. 그러니 불편한 속내며 불만이며 걱정 혹은 삐둘어진 심사까지 골고루 표현한다. ‘입 두고 말 못하면 그게 송장이지’라는 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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