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갈등의 시작
합가 후 처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에게 속내를 드러냈다. 정기진료가 있어 병원에 다녀오는 사이에 사건이 시작되었다며 딸아이가 귀띔했다. 어머니는 며느리와 손녀가 제때 밥을 먹지 않는 것과 밤새 불 켜진 손녀의 방을 문제 삼았다.
나름대로 그럴 사정이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어머니는 그 모든 일들이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억지를 쓰며 신세한탄을 했단다. 딸아이는 밤에 일을 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든다. 거의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비만 단계에 접어든 며느리의 다이어트 식사(과일, 채소)는 밥이 아니므로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퉁퉁하니 보기 좋은데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밥을 거르는지도 용납이 되지 않는 듯하다.
아들은 처음부터 잔소리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들먹였지만 어머니에게 통할 리 만무하다. 상대방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만의 주장만 펼치다보니 일그러진 감정들이 삼십 여분이나 오갔단다. 병원을 다녀오니 남편은 어느 저수지로 낚시 구경을 간다며 떠나버리고 어머니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고 누웠다. 애초에 예견된 상황이라 모른 척 했다. 끼어봐야 뾰족한 수도 없지 않은가.
어머니가 오시고 나서 남편은 부쩍 말수가 줄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딸아이 방문 앞에서 시위하듯 한참 동안이나 쭈그리고 앉은 어머니, 컴퓨터 책상에 앉은 아들에게 꽂히는 어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할 것이다. 어머니가 하는 일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도는 어머니의 눈빛은 해바라기다.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식탁에서의 식사는 고작 하루를 넘기고 포기했지만 어머니는 따로 상을 차리는 일을 만류했다. 아들 옆 식탁아래 밥그릇을 놓고 먹겠단다. 결국 명절에나 꺼내는 두레상에 밥을 차렸다. 그것 역시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밥그릇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몸을 웅크리고서야 식사가 편하단다. 밥상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낮은 찻상에 밥을 차리고서야 만족하셨지만 누군가와의 겸상은 물 건너갔다.
반찬에는 수저가 가지 않고 오로지 밥과 국만 먹는 것도 아들의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밥을 늦게 먹기로 소문난 남편인데 요즘은 후루룩 말아먹듯 한다. 암수술 후 회복 중에 스트레스는 금물인데 혹시 덧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따로 지낼 때, 가끔 남편에게 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면 ‘그러려니 하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하더니 정작에 본인은 그리하지 못한다. 나의 입장을 좀 이해하려나 싶기도 하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지 않는가.
결코 고칠 수 없는 습관이라 생각하는 게 가장 마음편한 방법이다. 게다가 치매라 생각하면 다투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음을 비우는 일에 겨우 적응이 되는 참인데 남편에게는 소원한 일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