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요일 오후 밥상을 차리다가 남편과 투닥거리고 '밥 차려주며 생색내는 아내'로 주말을 마무리했다.
매 끼니 메뉴 고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요즘.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점심은 뭐 먹어?"라는 남편의 질문에 나는 벌써 승질이 났다.(돌이켜보니 아침은 남편이 했구나. 짜파게티 요리사)
아침 대청소를 마치고 쉬다가 나는 아이랑 외출할 계획이었다. 남편은 집에서 쉬겠다고 했으니 점심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도 됐을 텐데, (신랑의 요청대로) 굳이 배고픈 와중에 먼 길을 포장해서 온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항상 무리하면 사달이 난다.)
외출을 마치고 들어와 포장해 온 순댓국을 끓이고 밥상을 차리는데 낮잠 자다 이제야 깨서 미적대는 남편의 모습에 이미 화가 났다. 그래도 하는 김에 밑반찬까지 다 차려놓고 자리에 앉았는데 추가로 쌈장을 갖다 달라는 남편의 요청에 뚜껑이 열렸다. 아이 앞이라 대놓고 화도 못 내고 기어이 쌈장을 갖다 주며 툴툴대니 남편도 참지 못해 받아쳤고, 결국 식사자리엔 한기가 돌았다. 밥 때는 이미 지나 남편도 배가 고팠고 나는 피곤했으니 서로 예민한 상태였겠지.
속이 꽉 찬 순대를 내 밥그릇에 올려주는 남편의 화해 요청에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안 해도 될 억울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넘쳐났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도 피곤함 때문인지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토요일만 해도 나는 친구들과 약속을 다녀오는 동안 남편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부부 가족모임으로 즐겁게 마무리하며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남편에 대한 고마운 기억들은 왜 이렇게 금방 사라져 버리는 건지...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남편은 전날 자기가 노력한 보상으로 따뜻한 밥상을 대접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 청소 때 너를 부르지 않고 쉬게 한 걸로 난 이미 보상을 끝냈단말이다.)
엄마들의 '화'라고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피곤함'이라고 한다.
외출을 다녀와서도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화가 난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도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날 무리한 일정에 아침에 대청소까지 했으니 분명 피곤했을 텐데 그걸 무시하고 아이가 원한다며 외출 일정을 또 잡았다. 차를 가져갔으면 그나마 수월했을 텐데 운동 겸 걸어서 다녀온 것도 화근이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해야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는데, 몸이 피곤할 때는 운동보다 잘 쉬고 잘 챙겨 먹는 게 먼저인데 그걸 자꾸만 건너뛴다.
이번 사건도 문제의 시작은 밥때문이 아닌가. 제 때에 밥을 잘 챙겨 먹는 일.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그것을 경시한 내 탓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몸을 돌보고 내 마음을 돌보고 나를 위한 그리고 가족을 위한 다정한 한 끼를 준비하자. 나를 돌보는 일이 곧 가족을 돌보는 일이다.
다정함 분명 체력의 영역이다. 내가 나를 돌불 줄 아는 사람만이 다정함을 가질 수 있다. - 말가짐, 채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