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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b Apr 09. 2024

주말 독박육아에도 남편에게 화내지 않는 법

며칠 전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너무도 설레하며 이야기를 한다. 이번주 토요일에 라운딩가도 되겠냐고, 친구에게 프로랑 조인 부탁을 해놨는데 그게 이번주로 잡혔다고.

일정을 보니 일요일도 라운딩인데?
우리 집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는 휴가는 각자 휴가를 쓰고 평일에 가거나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

그래도 남편이 이렇게 설레하는데 가지 말라고는 못하겠고, 머리를 굴리다가 용돈을 요구했다. 난 이틀간 독박육아 하는데 돈이라도 써야 화가 안 날 거 같다고 (아이와 나의 성향 상 밖에서 하는 육아가 훨씬 수월하고 나가려면 돈이 든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남편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수긍한 듯 봉투를 준비했다. 라운딩 비용에 와이프 용돈까지 부담이 되겠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아이와 둘이 지내는 내가 돈을 더 써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사람도 두 명에 육아도 하는데!!






결전의 토요일. 집에서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아이와 둘이 우리가 즐겨가는 쇼핑몰로 출발했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드라이브하듯 기분도 좋았다.


오늘 나의 목표물은 다이슨 에어랩이다. 똥손인 내가 잘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느라 몇 년이나 지났는데 최근에 너무도 예쁜 봄컬러가 출시되어 눈에 아른거리던 참이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점은 같이 쇼핑을 즐기기도 하고 여자놀이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자 같은 성격의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엔 꾸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공주놀이를 좋아하는 딸과 지내다 보니 나도 여자놀이하는 게 재미있어졌다.


그렇게도 고민하던 에어랩을 사기로 마음먹은 것도 아이 영향이 크다. 남편은 아이가 어릴 때 파마하는 걸 반대했고 아이도 친구들을 보고 파마머리를 해보고는 싶은데 이상할까 봐 무섭다고 한다. 그러니 머리만 감으면 다시 긴 생머리로 돌아올 수 있는 에어랩으로 웨이브머리를 해주는 게 최선이지 않은가!


남편에게 받은 용돈과 그동안 꿍쳐두었던 상품권을 합쳐서 드디어 영롱한 그 아이를 내 손에 넣었다!!


내 목표는 완수했고 다음은 아이차례. 아이는 지난번에 문 닫아서 못 먹은 솜사탕을 먹는 게 오늘의 목적이다. 비싸기도 하고 이에도 안 좋은 간식이라 평소 같으면 말렸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장난감을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5000원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것 아닌가.


일주일 전부터 기대해서 그런지 솜사탕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며 설레하는 모습과 귀여운 곰돌이모양 솜사탕을 받아 들고 거침없이 한입 베어 물며 행복해하는 아이 표정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오천원짜리 솜사탕의 찐행복


장난감 구경도 하고 아이쇼핑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를 시켜서 나눠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써 어둠이 내려앉았다. 쇼핑하느라 피곤한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금세 잠이 들고 오늘의 나 홀로 육아는 독박육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와 데이트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역시 돈을 쓰니 화가 안 나는구나 ㅋㅋㅋ
(나잘알, 더 놀다 와 자기야)


+ 오늘의 교훈
미래의 화풀이 쇼핑을 위해 미리미리 비상금을 꿍쳐두자 (남편의 비상금도 못 본 척 하자)



한마디로 쇼핑했단 이야기를 이렇게나 길게 하는 돈 써서 기분 좋은 한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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