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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작가 Mar 07. 2021

네 번째 이야기. 아는 사람 이야기.

취준생과 직장인의 연애.

 남들보다 길었던 취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 내 오랜 취준에 있어 뗄 수 없는 사람이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 암흑 같던 내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비쳐준 그 사람이. 그 사람 덕분에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오빠, 이번 설 연휴 때 내려가지 마. 나랑 놀러 가자."


 사회를 향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 전이었던 2017년 12월. 내 미래를 두고 부모님과 큰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동안 부모님은 내가 공기업을 준비하는 줄로만 알고 계셨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부모님에게 전한 순간 큰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었다.


"안 그래도 이번 설 연휴 때 안 내려가려고 했어. 나는 좋아."


 그 갈등에 지친 나는 온 가족이 모이는 설에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걸 선택했다. 하지만, 설 연휴 때 같이 여행을 다녀온 다음. 그 사람의 태도는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새로운 일을 맡게 되어 그런 줄로만 알았다. 연락이 평소보다 잘 되지 않는 것도. 주말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인 줄 알았었다. 


 몇 주만에 만난 4월의 어느 날. 많이 달라져버린 그 사람의 모습에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봄비라고 하기엔 많은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사람의 행동과 눈빛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날 내내 그 사람의 뒷모습만을 쫓으며, 2017년의 여름을 떠올렸던  나였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 나 이번 주에도 할게 많아서 지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천천히 변해가는 그 사람의 모습에 가슴속 한편에 '불안'을 키워나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그 불안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애써 눈물을 감추려 했지만, 이미 그 사람의 내 눈에 맺힌 물을 알아차린 뒤였다. 


"오늘은 둘 다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네."


 내 눈물을 본 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그 사람 집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테이블에 앉아 우리는 빨대가 꽂힌 커피 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잠깐의 침묵 뒤에 그 사람이 하나 둘 속마음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슬슬 결혼이란 걸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오빠랑 함께 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나한테 표현도 잘해주고, 성격도 잘 맞아서 같이 있으면 즐거운데... 평소에 연락하면서 미안한 마음만 자꾸 들어."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언제까지나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우리가. 남들과는 달리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어는 순간 엇갈려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미래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가 그려지지'않는다는 그 사람의 말은 내 가슴을 깊숙이 찔렸다. 아직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31살. 누가 봐도 미래가 그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던 나는 그 사람의 말에 앞으로 바뀌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 날이 연인으로서의 마지막 날인지도 모른 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 모두 그만두고 싶은 만큼 힘들어. 그러니까 우리 이제 그만하자."


 마지막으로 본 뒤 2주가 넘었을 때쯤. 3일 동안 연락이 전혀 없던 그 사람에게서 듣게 된 말은 영원히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몇 주전만 하더라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서인지. 아니면 나와 함께 미래를 생각했었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부끄럽다고 얘기를 건넸던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침묵 뒤에 들려온 말은 내가 기다렸던 말이 전혀 아니었다. 그 말에 나는 계속 매달려봤지만, 그때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었다.


"이제는 오빠랑 같은 마음이 아닌가 보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그 사람을 놓아주어야만 했다. 좁은 방 안. 다음날 그 사람에게 만들어주려고 사다 놓은 도시락 재료들과 편지가 나처럼 놓여있을 뿐이었다.


 헤어진 다음 날. 놀랄 만큼 잔잔한 마음에 생각보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았구나 여겼다. 하지만, 시간의 여백이 느껴지는 순간. 잔잔했던 마음에 큰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눈물 없이 하루를 보내기엔 하루가 너무 길었고, 억지로 잠을 청해봐도 아침해가 뜨기 전까지는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야! 언젠가는 다시 연락 와.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미 끝나버린 관계는 다시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그 사람의 말이 아직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있던 탓에 친한 친구의 위로가 전혀 내게 와 닿지 않았다. 다시는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흘러 보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아픔에서 벗어나려 지금 내 곁을 떠난 그 사람을 원망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거 같애. 나는 천천히 타오르는 지금도 나쁘지 않아."


 내가 처음 고백했던 날. 같이 한강으로 가기 전 함께 저녁을 먹었던 그 초밥집을 다시 찾아갔던 2018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나눴던 얘기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과  같았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나가버린 지금. 더 사랑하지 못한 후회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후회는 시간이 지나 그리움으로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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