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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작가 May 09. 2021

여섯 번째 이야기. '을'인 시장에서 버티기. -1-

아프면 환자다.

【아프면 환자지 XXX야, 뭐가 청춘이야?】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한 예능프로에서 나온 대사는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한 번쯤은 들어봤던 책 제목.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티비 프로에서도 가끔 사용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청년들에게는 암울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었고, 기성세대의 잘못이 고스란히 청춘들의 고통으로 전해지면서 '청춘은 아프다'라는 말이 더 이상 위안이 될 수 없었다.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유병재가 사무실을 나서면서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2021년인 지금. 여전히 청춘들은 암울한 현실에 아파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사람들은 늘 언제나 희망찬 장밋빛 미래를 꿈꾸곤 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시작부터 어두운 날을 그리지는 않는다. 두 번째 취준을 앞둔 서른한 살의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물론, 첫 번째 취준을 할 때와 같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흑 속에 있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취준을 시작하기 전 충분히 기반을 쌓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시작부터 마음가짐이 달랐었고 그만큼 자신감도 충만했었다. 하지만, 눈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구직 사이트인 '잡ㅇㅇㅇ', 'ㅇㅇ인'에 기본적인 자소서를 올려놓고 사이트에 괜찮은 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일단 지원하기를 눌렀다. 하지만 지원서를 내는 족족 내게 돌아오는 건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했을 때는 적어도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알여주었지만, 구직 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경우에는 대부분 그 결과조차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똑같은 내용으로 올라오는 공고를 보며 결과를 짐작할 뿐이었다. 


 꾸준히 지원서를 낸 지 한 달. 면접조차도 잡히지 않는 상황을 겪으며,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라온 취업과 관련된 영상들을 참고하고, 자소서 첨삭을 받으며 다시 이력서와 자소서를 꾸며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새로 고친 이력서와 자소서를 들고 여러 기업에 뿌리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늦은 아침을 맞이하며, 연락 온 회사는 없는지. 새로 뜬 공고 중 넣을만한 기업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늦게까지 지원하는 기업에 맞게 자소서를 쓰고,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을 9월 내내 반복했었다. 그리고 수많은 기업의 채용공고를 읽으면서 마주한 현실은 조금씩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신입은 도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나요?'


 취업시장에는 매년 생애 첫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채용하기보다는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경력'을 원하고 있었다. 대기업 공채를 제외하고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공고에는 하나 같이 필수조건에 '경력'을 명시하는 공고가 많았다.


『관련 경력 1년 이상인 사람. 결산업무 경험자. 경력 3년 이상인 자.』


 다른 직무는 잘 모르겠지만, '회계' 채용공고에는 위 문구가 빠짐없이 삽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신입'을 뽑는 채용공고에도 우대사항에 위의 말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렇게 '경력'을 원하는 회사들의 채용공고를 접할 때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나는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취준을 하는 동안 정말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채용공고가 아닌 면접장에서 마주했던 면접관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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