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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작가 May 30. 2021

여섯 번째이야기. '을'인 시장에서 버티기. -2-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저는 면접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고객입니다.

 취업시장에서 췬준생을 울리는 건 경력만을 원하는 회사의 모습 만이 아니다. 서류 전형을 뚫고 면접장에 들어선 취준생을 상대로 소위 '압박면접'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또 다른 폭력이었다. 


'압. 박. 면. 접.'


  일부러 면접자에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연속으로 던지는 형태의 면접. 면접자가 압박을 받는 상황. 곤란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모습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기업에서 이용하고 있는 면접이다. 하지만 본래의 의도에는 벗어나, 면접자에게 고통을 주고 불쾌한 감정을 경험하는 일이 많아졌다.




 두 번째 취뽀를 하기까지 나는 총 7군데의 기업에서 면접을 보았다. 대부분은 나름대로 '구직자'를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면접을 보았었다. 하지만, 이 중. 중견기업 한 계열사에서 봤던 면접은 전혀 그렇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불쾌한 감정이 강하게 자리 잡은 최악의 면접을 경험하게 되었다.


  2018년 11월. 패션업계에서 나름 상위권에 위치한 한 중견기업의 계열사. 그곳에서 봤던 면접은 타인에 의해 내 존재가 철저히 짓밟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최악의 면접이었다. 그리고 그때 면접장에서 내게 질문을 건넸던 면접관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업박면접이라는 이름 아래 면접자를 짓밟는 면접관.』


 면접은 2대 1로 시작되었고, 두 사람 중 좀 더 높은 직급의 사람이 주로 질문을 던지면 면접이 진행되었다. 이력서를 천천히 훑으면서 가벼운 얘기로 면접이 시작되었는데, 그때부터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 보니깐 이력서 사진이랑은 조금 다르시네요?"

"아, 최근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살이 좀 쪄서 그럴 겁니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세요? 그럼 곤란한데..."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점점 면접이 진행될수록 나를 면접장에 부른 이유가 궁금해지는 면접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본인이 입사해서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회계 강의를 재밌게 들었으며,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앞으로 제가 하는 직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지난 3월 이후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고, 올해 여름에 목표로 했던 자격증을 모두 따며, 기본적인 능력을 갖췄습니다.”

 

자격증은 자격증에 불과해요. 어차피 입사하면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니까 그거 말고 본인이 이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어필해보세요.”

음... 일단 성적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강했던 회계과목에서는 모두 A 이상을 맞을 만큼 성취도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3개월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전에 있던 곳에서 영업지원 직무를 하면서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을 만큼 꼼꼼하고 세심하게 맡은 일을 잘한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전에 있던 곳도 3개월 만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말할 수 있나요? 제가 보기엔 충분히 다시 직무가 맞지 않는다며 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취준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이걸 꼭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때문에 직무가 맞지 않아서 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참고로, 저희 얼마 전에 사람 뽑았었는데, 그 친구도 돌려보냈어요.”

네, 하지만 저는 다를 겁니다.”


 시간이 오래 흘렀기에 그날 면접장에서 나눴던 대화가 오롯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 답변에서 궁금한 점을 묻기보다는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아 나를 압박하는 형식으로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부정적인 반응을 대놓고 드러내는 면접관의 태도에 나는 서서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면접관의 마지막 말이 꽤나 불쾌했다.


"아 그리고 혹시 담배 피우시나요?"

"네 피우긴 합니다만 많이 피우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저희 회사에 들어오면 담배 끊으실 수 있으신가요?"


 여기까진 이해 가능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예 완전히 끊으셔야 해요. 퇴근하고 나서도 담배 피우는 거 말고. 완전히 끊어야 해요."


 회사에서는 근태와 관련하여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를 벗어나서도 개인의 기호까지 통제하려는 모습이 쉽게 이해 가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는 속으로 '당신이 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용공고에 흡연에 관해 어떠한 문구도 없었기에 그 말이 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 그리고 끝까지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는 듯한 태도 등 면접자에게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면접이었다. 차라리 직무에 대한 질문에 답을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나 자신을 탓하고 그만큼 노력을 하면 되지만, 이 면접은 복기를 할 필요조차 없는 시간낭비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함께 일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이 곳에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멀리 떠나간 상태였기에 면접이 마무리될 때쯤 회사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면접장을 나섰다. 

 

결과는 나중에 알려줄게요.”

 

 결과는 나중에 알려준다는 말. 그 말마저 거짓말이었다. 면접을 본 후, 새로운 곳에 입사할 때까지 면접 결과를 통보받지도 못했다. 아마도 내가 ‘을’이 아닌 ‘소비자’였다면 똑같이 응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단 이 곳뿐만 아니라, 면접을 봤던 곳들 중 상당수는 면접을 보고 나서도 제대로 된 통보를 해주지 않는 곳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없는 연락에 구직자는 지레짐작으로 떨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취업시장의 현실이고, 청춘들의 아픔이다. 그러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위로와 공감이 되는 말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철저한 ‘을’의 입장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취업시장의 현실은 지금도 청춘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OO씨, 핸드폰 맞으신가요?”

 

 생애 최악의 면접을 경험한 뒤 나는 한가한 골목길에서 씁쓸한 연기를 빨아들이며, 면접에서의 좋지 않았던 기분을 하연 연기에 실어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때 모르는 번호로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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