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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작가 Jun 14. 2021

일곱 번째이야기. 취업과 연애의 상관관계

이루어질 운명은 이루어진다.

 생애 첫 최악의 면접을 경험하기 일주일 전. 두 번째 취준을 하며 관심을 가졌던 사업분야는 아니었지만, 오로지 대기업 계열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원을 했던 곳이 있었다. 


"OO씨, 핸드폰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서류전형 합격하셨구요. 방금 메일로 인적성검사 주소 보내드렸습니다. 오늘 중으로 인적성검사 완료해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악의 면접을 경험한 덕분에 오늘 하루만큼은 충분히 쉬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오늘까지 인적성검사를 완료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자주 다니던 카페로 들어가 인적성검사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두 번째 취준의 끝을 향해 나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취업'은 '연애'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들 한다. 그리고 두 번의 취준을 경험했던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혼자서 나름 대로 알아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커지기도 또는 줄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비슷한 건. 내 노력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루어질 사람이라면 우연이든 운명이든 어떻게든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OO씨, 인적성검사 결과 최종 합격하셨구요. 다음 주에 면접 보러 오시면 됩니다."


 한 중견기업 계열사의 심한 압박면접으로 기분이 와장창 무너졌던 날. 대기업의 한 작은 계열사에서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당시에 난. 이 연락이 나의 두 번째 취준을 끝내줄 거라고는 몰랐었다. 회사의 규모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 규모가 크든 작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지원했던 곳이었다.


 연락을 받고 며칠 뒤,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던 11월의 마지막 날. 이 면접에서도 떨어진다면 2018년도 그냥 보내게 될 거라는 생각에 면접에서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이었음에도 평소보다 더 긴장한 채 회사를 찾았다. 작은 건물 2개 층을 쓰는 회사. 그 안에 마련된 대기 공간에서 직원이 건네준 녹차를 마시며 차가운 날씨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있었다. 잠시 후 직원의 안내로 면접장에 들어서며 두 번째 취준의 마지막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면접은 '공백기'에 대한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입'을 뽑는 자리여서인지는 몰라도 직무에 관련된 내용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조직에 어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한 내용을 중심으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때문에 면접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그냥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듯이 면접을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직무에 관련된 질문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업무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회계 직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만 물어보았다.


"오늘, 면접 보러 오는 친구들 다 괜찮네. 앞에도 괜찮고 이번에도 괜찮네."


 긍정적인 면접관의 말.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괜찮다는 말에 합격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면접을 보고 나니 어느새 달력은 2018년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 있었다. 두 번째 취준을 시작할 때. 2018년이 지나기 전에는 무조건 '직장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만만치 않았고, 면접의 결과를 확신할 수 없었던 나는 여전히 구직사이트를 이 곳 저곳 살피며 지원할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OO씨. 다른 건 아니고 혹시 생각하고 있는 연봉이 있으신가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월 200 이상은 받고 싶어요."

"네, 알겠습니다. 조만간 바로 결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렸던 합격 소식은 아니었지만, 면접을 봤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단순히 희망연봉을 물어보는 전화였고, 평소 최소 3,000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낮춰서 그 질문에 대답을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 계열사이긴 해도 이제 막 업력 5년 차였기에 신입사원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 후... 다시 같은 번호로 연락이 왔다.


"OO씨, 입사 확정되셨구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돼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덜컥 합격 전화를 받고 나서는 약간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내년을 준비하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짧은 시간에 두 번째 취준이 끝나버린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나는 희망연봉을 너무 적게 부른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규에 따라 아무리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연봉을 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부른 금액 그대로 결정될까 봐 작은 걱정이 생겼다.


 하지만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까지 회사에 붙어있어야 되는 직장인 생활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이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될지라는 고민이 그 걱정을 날려버렸다. 오랜 공백기에 두둑할 일이 없었던 통장. 때문에 난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단지, 일주일 동안 아무 걱정 없이 넷플릭스를 하루 종일 보거나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낸 후, 한동안 멈췄던 글을 다시 쓸 뿐이었다. 이렇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두 번째 입사일이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나의 두 번째 취준은 호기롭게 시작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당장이라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나는 다시 빠르게 암흑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생애 최악의 면접을 경험을 하기도 하면서 자존감은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8년 12월. 나는 대기업의 작은 계열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경영지원팀에 입사하게 된 OOO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길었던 나의 취준은 이렇게 끝이 났다.

 31살..

 나는 신입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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