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미국행을 동시에 준비하며, 첫 번째 셀프 결혼수업_#1
그를 만나는 동안,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라는 흐릿한 예감이 있었다
어느 정도 뜨거운 여름을 각자의 자리에서 보내고, 약간은 나이가 있는 때에 만나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거였을까,
혹은, 우리를 둘러싼 상황과는 상관없이 그에게 어떤 안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혼자서도 척척 모든 것을 해내던 나의 싱글 라이프를 파고 들어온 그에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솔직했고, 열렬히 그의 삶은 응원했으며, 상처받음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이별과 분리에 불안이 있는 나에게 사랑과 관계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는 어떤 이유로든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미련한 일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해에는 지난 삶과는 다른 내 안에 응축된 힘이 넘치던 해였고, 그와는 어떤 식으로 이별하게 되더라도 스스로 괜찮다고 애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용감했으며, 혹 우리의 삶 가운데 내일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도 오늘이 후회되는 삶은 살지 말자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더 많이 용기 내서 살았던 시간이었다.
그와는 그런 시간들을 함께했었다.
그렇게 유랑하듯 연애만을 몰두할 것 같았으나, 오랫동안 기도해하며 열심으로 준비하던 기쁜 일과, 그에 따른 큰 변화가 같이 온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미뤄뒀던 결혼이라는 관문을 결정해야 했다.
나는 흐릿함을 명확함으로 바꾸어야 했다. 많은 변화를 감수했으며, 내게 주어진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내가 결혼을 향해 큰 용기를 내었기에, 당연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많이 묻지 않았고,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관문 앞에 놓인 수많은 절차들을 마치 회사 프로젝트 하듯이 하나씩 격파해 나가자며 그와 나 자신을 급하게 달음질쳐갔다. 예비 신부에게 쏟아지는 말들,,, 결혼을 경험한 지인들이나, 웨딩업체들은 신랑보다는 신부에게 준비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나열해 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급함을 더했다. 나 역시 결혼은 처음이라 그들의 말에 홀리듯 결혼 일정들을 꾸역꾸역 욱여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크게 탈이 났고 모든 것이 멈추었다.
결혼식은 아무리 절차가 많고,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식은 사실 쉬웠다. 누구와도 어떻게든 하려면 할 수 있는 것이 결혼이었다.
그러나 사실 결혼은 정말 무겁고 어려운 것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해도, 너무 생각하지 않고 마냥 덮어두기만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결혼이었다.
새로운 관문 앞에, 내 앞에 대상과 연애 때와는 다른 감각으로 부대껴가며 이뤄가는 어떤 결과물은 끝을 위한 게 아니고, 사실 긴 시작을 위한 작업이기에 더 무겁게 와닿았다.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 온점을 찍고 새로운 문장으로 나와 함께 달려줄 줄 알았던 그가, 여러 가지 물음표를 늘어놓는 것들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결혼이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그냥 문제고 뭐고 다 덮어버리면, 혹은 벌어진 상처들을 둔 채 도망가 버리면 쉬운 해결이 될 것 같았다.
우리 앞에는 결혼하지 않은 혼기 꽉 찬 나이의 커플이란, 헤어짐 혹은 아묻따 고! 라는 선택지밖에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결정을 내리라며 내달리는 힘만큼, 반대로 그 어떤 선택도 평소보다 섣불리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그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은 것인지, 서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결정적일 때 드러나는 약점은 무엇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치스러운 말과 행동들은 무엇인지.
그것들을 보고도 '괜찮아,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혹은, 지금 이 짧은 시간에 드러나지 않은 더 충격적인 모습을 알게 된다 해도 '괜찮아, 나는 당신 곁에 있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짐도 아묻따 고! 도 아닌, 갑자기 주어진 멈춤의 자리에서 13시간의 시차를 극복하며 긴 이야기들을 해나갔다.
어느 때에는 각자 침묵하며 기도했고, 어느 때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빌려 결혼하지 않아도 인생은 돌아간다는 감각을 가지며 위로했으며, 어느 때에는 서로 했던 얘기를 무한 반복하는 지리한 이야기들을 해나가야 했다.
한때, 나는 '상대에 대한 믿음과 검증이 끝나면 결혼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냉장고 스펙을 읊듯 이런저런 이유로, 혹은 내가 만나본 누구보다는 그래도 이 사람이어서 등등
수학의 알고리즘까지는 아니지만 이 사람은 배우자!라고 결정이 자판기처럼 떨어질 줄 알았다.
우리 관계의 회색 지대의 시간 동안 나는 상대를 더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검증하려 했으며, 그리고 이해하려 했다. 더 들여다보고, 더 이해하면 할수록 하나하나 걸리는 것들이 크게 보이고 심지어 그 문제가 해결이 돼도 불안했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것을 보지 못한 채 '법률혼'이라는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더욱더 불안감을 가중시키기만 했다.
상대를 들여다보고 상대에게 믿음을 더 가지려 할수록, 갖게 되는 것은 믿음과 결혼생활에 대한 확신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왜 결혼하려고 하는가
그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는 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홀로의 시간, 질문의 끝에서 나는
결혼의 결정은 바라고 받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주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상대가 정말 괜찮아서 결혼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나는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한다.
나는 내가 정말 괜찮기 때문에, 그와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혼이 실패하면 어떡하지? 불안이 밀려오다가도 나는 내가 괜찮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 결국 해결할 것을 안다.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확신.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기에 나와 함께하는 누군가도 행복할 거라는 용기.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변하지 않는 나'라는 감각!
긴 자취생활과 싱글의 생활을 오래 했기에, 나는 혼자 사는 삶이 나에 대한 감각을 더 견고하게 더한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은 다른 의미로 나에 대한 감각이 견고하지 않으면 이뤄나갈 수 없는 과정이다. 내가 분명해야, 내가 건강하게 서 있어야 더 건강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것이 결혼이며, 결혼 준비는 그 결혼의 삶에 대한 부차적인 절차들을 통한 예행연습이다.
그 사람이 결혼에서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컸기에, 결혼이라는 관문으로 다시 뚜벅뚜벅 걸어간다.
어떻게 혹시, 어떤 일이 온다 하더라도 괜찮다. 나는 변하지 않으니까라는 마음을 다독이며...!
그리고 주저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보니 그도 고독의 시간 동안 치열한 물음표에 대한 답을 해결하고, 자신만의 확신을 갖고 다시 내가 알던 그로 든든히 서있다.
처음 이것저것 알아본다고 웨딩북 앱을 실행할 때마다 뜨는 이 말이 참 좋았다.
결혼은 원래 신나는 거야.
그래! 결혼은 원래 정말 좋은 것이다. 사연 없이 식장에 들어가는 커플들이 어디 있겠나.
미지의 차원이 다른 세계로 뚜벅뚜벅 용기 내어 걸어가는 모든 커플들이 결혼 준비의 부차적인 것들로 압도될 때마다, 결혼의 본질을 되새기면 좋겠다.
결혼은, 원래 신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