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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댁 Jan 13. 2019

짜장면 먹을래? 마라탕 먹을래?

episode_03

"오늘 뭐 먹을까?" 

“글쎄~ 아무거나”


“그럼... 치킨?”

“아니 살쪄 느끼해”


“피자?”

“돼지 되고 싶어?”


“음… 회덮밥!”

“따뜻한 거 먹고 싶어”


“일본 라멘?”

“그건 어제 먹었잖아”


하루 중 가장 큰 고민. 아내의 까다로운 저녁 메뉴를 맞추는 일이다. 

시작은 무관심하게 "아무거나"라고 외치지만 결국 원하는 음식 메뉴가 내 입에서 나오길 기대한다. 나는 저녁마다 아내를 분석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아내의 눈빛을 읽어 메뉴 3~4가지를 골라 말하면 못 먹는 이유는 수십수백 가지다. 나는 결국 메뉴를 고르다 지쳐 외친다.


"그럼 마라탕 먹자"

"좋아요!!!"


기다렸다는 듯 아내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마라탕은 이미 내 입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메뉴였다. 저녁 메뉴 선정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겉옷을 챙겨 나가는 아내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마라탕은 우리 부부에게 소울푸드이자 하이패스 메뉴다. 어제도 오늘도 마라탕은 저녁 고민을 쉽게 해결한다. 고민 없이 결정하는 메뉴지만 아내의 입맛에 검증된 마라탕 집은 건대입구, 대림, 명동 3곳뿐이라 거리가 멀어 항상 먹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주변을 아내와 지나칠 때면 그날 저녁 메뉴만큼은 고민할 필요 없이 마라탕이다. 


아내의 마라탕 사랑이 어느 정도냐 하면. 아직 한국 비자도 없는 장인 장모님을 끌어들여 마라탕 가게를 차릴 계획까지 세워뒀다. 신축 건물에 비싼 권리금을 욕하면서도 포기할 줄 모른다. 혹시 대박이 날지도 모르지만, 아내의 마라탕 창업은 우스갯소리이기만을 바란다.


나도 아내만큼 마라탕을 좋아한다. 아내에게 뺏기지 않는 유일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같은 짜장면을 주문해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 내 짜장면은 항상 아내의 것이 되곤 한다. 하지만 마라탕만큼은 오로지 내 것이다. 아내가 싫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실컷 넣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라탕은 개인 맞춤이 가능한 요리다. 

내가 원하는 재료만 마음껏 넣어도 요리는 완성된다. 이런 개취 존중 요리가 또 있을까? 

게다가 주문에서 조리까지 빠르고 간단한 과정은 마라탕의 장점이다.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완성한 마라탕

1. 취향에 맞게 원하는 재료를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소시지, 완자, 배추, 고수, 청경재, 시금치, 건두부, 버섯, 당면, 중면, 소면 등등 재료의 무게 측정으로 계산)

2. 국물의 맵기를 선택한다.

    (오리지널, 순한 맛, 매운맛, 아주 매운맛)

3. 양고기, 소고기 토핑을 기호에 맞게 추가한다.

4. 국물(마라탕)을 먹을지 볶음(마라샹궈)을 먹을지 선택한다.

5. 짧은 조리 시간(5분)을 기다리고 음식을 받는다.



요즘 들어 마라탕, 마라샹궈, 마라롱샤 등 마라 3 대장을 방송이나 블로그에서 자주 접한다. 특히 인지도가 낮았던 마라롱샤는 장첸이 먹던 가재요리라 설명하면 다들 감탄사부터 터트린다. 혜성처럼 등장한 마라탕이 지금까지 한국인의 입맛을 평정한 중식 대부 짜장면의 아성을 무너트리고 있다. 

짜장면 가라사대 "이제 마라의 시대다."


사실 앞서 찬양하듯 마라탕을 말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처음부터 마라탕을 좋아하지 않았다. 강력한 마라샹궈의 첫 경험 덕분이다. '마라탕'과 '마라샹궈'는 같아 보이지만 다른 음식이다. 마라샹궈는 볶음, 마라탕은 국물 요리다. 특히 마라샹궈는 매운맛을 내기 위해 특별한 재료가 추가되기 때문에 주의해야만 한다. 마라샹궈를 처음 먹던 날 나는 기대에 부풀어 아내의 주의사항을 흘려들은 것이 눈물 콧물을 쏟게 될 줄은 몰랐다. 


"오빠, 마라샹궈 어때? 맛있지?"

"너... 너무 특이한데?"


"조금 맵긴 하지만 한국에 매운맛과 다른 느낌이 있어."

"그래? 난 입술이 터질 거 같고 혀가 얼얼해. 마비된 거 같아."


"그 정도는 아닌데? 혹시 오빠 이거 먹었어?"

아내의 젓가락이 가리킨 건 건져낸 통후추들이었다.


"응. 이거 먹는 거 아니야?"

"아니지. 내가 먹지 말라했잖아;;;"


더 이상의 대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통후추를 순댓국 들깨처럼 아작아작 씹었으니 혀가 마비되는 고통은 당연한 결과였다. 혀는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어금니에 낀 후추는 빠져나올 생각이 없었다. 내 엉성해져 가는 한국어 발음에 아내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이런 발음을 듣고 잘도 대답하는 아내를 보며 나도 웃음과 콧물이 같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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