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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댁 Dec 19. 2018

세 번째 만남

episode_02

"오빠 정말 못생겼어요."


충격이다.

소개팅 중 면전에 대놓고 못생겼다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이런 직설을 과감하게 말한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내 아내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아내를 소개받았다. 아는 동생은 그녀가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 했다. 동생에게 연락처를 받아 만날 날을 정하고 순조롭게 소개팅을 이어갔다.


그녀는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두 번의 짧은 만남으로도 나는 그녀가 금방 좋아졌다. 사실 연이은 소개팅 실패와 외로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녀를 세 번째 만나는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두 번에 에프터도 성공하고 세 번째 만남은 성탄절이라니. 특별한 날이 될 거 같아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나는 평소 그녀가 해보고 싶다던 도자기 공방을 어렵게 예약하며 '사랑과 영혼'을 부끄럽게 상상했다. 도자기를 만드는 동안 그녀는 특별한 경험에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영화 같은 스킨십을 기대했지만 원데이 클래스에 사랑과 영혼은 없었다.



'사랑과 영혼'을 기대했던 순간


공예를 마치고 답례로 그녀가 맥주 한 잔을 제안했고 우리는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당차게 맥주를 시키던 그녀는 자몽맥주 한 모금에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나는 속 깊은 진심을 물어볼 기회는 지금이라 생각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우리 만난 게 이번이 세 번째인데 어땠어요?"

"매번 재미있는 곳에서 추억 만들어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에 나는 결정적인 타이밍을 찾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선수를 친 건 그녀였다.


"오빠 사실 할 말이 있어요."

"응? 뭔데요? 말해봐요"

"이전부터 느낀 건데... 너무 놀라지 마세요."

"네. 걱정 말아요. 나 준비돼있어요."

"사실... 오빠 정말 못생겼어요!"


당차게 속내를 털어내며 웃던 표정이 결혼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렇게 후련해 보일 수 없었다. 죄짓고 못 사는 사람처럼.



"응? 내 어디가?" "왜?"

"아무리 봐도 못생긴 거 같아요ㅋㅋㅋ. 못생겼지만 마음이 정말 착하고 솔직하세요"


말이야 방귀야. 나는 그녀의 말을 당시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못 들은 걸로 하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은 터질 듯 빨갰지만 분명 실수할 만큼  취해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만남에 못생김 지적이라니. 기대에 차 있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색함이 내 얼굴에서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얼른 상황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일어나자 했다.


술집에서 그녀의 자취방까지는 멀지 않았다. 집에 바래다주는 짧은 시간. 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외국인의 거절 표현은 이렇게 직설적인가?”, “나는 세 번째 만남인데 고백은 언제 하나?”


슬픈 크리스마스이브, 마지막 만남이 될 거 같아 조바심이 커져갔다. 결국 나는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다 허접한 고백을 급하게 뱉었다. 바보같이.

그리고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아직"이었다.


"나는 아직 오빠를 잘 몰라요. 그래서 결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나는 오늘 처음으로 솔직한 마음을 오빠에게 표현했어요."


내 입은 순간 얼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무겁고 신중했다. 반면 나는 가볍고 무심했다. 몇 번, 몇 시간의  만남으로 남을 판단하고 결정짓는 한국의 소개팅 문화는 그녀에게 진실이 없어 보였다. 한국은 모든 게 빨리빨리인데. 사랑도 빨리빨리였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녀는 한국 문화를 접하며 자신만 모르는 한국의 암묵적인 룰에 당황하고 힘들 때가 많았다. 당연히 알겠지 라는 우리의 가벼운 생각이 그녀에게는 부담이자 독촉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듣고 이해하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그녀는 조금 전 상황을 잊은 듯 다시 해맑게 말을 이어갔다.


“다음에 중국음식 먹으러 갈까요?”

"마라탕이라고 먹어봤어요?"


이후 몇 번째 만남인지 셀 수 없을 때가 되고 내가 못생겼다는 걸 어렵게 인정할 때쯤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 있었다. 연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어디가 그렇게 솔직해 보였는지 궁금해 물었다. 아내는 도자기 공방에서의 내 모습을 기억했다. 스킨십을 기대하는 그 눈빛. 기회를 찾아 안절부절못하는 행동이 몇 번이나 실 웃음 짓게 했단다. 아내는 내가 착하고 솔직한 사람이란 걸 그때부터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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