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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티카 Sep 29. 2021

높아진 담 너머로 보내는 향기

매드프라이드 유니버스 인터뷰 ep.3

정신재활시설 공동생활가정 한마음의 집 원장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정신재활시설 공동생활가정 한마음의 집 최동표 원장



최동표 : 진순이를 보내려고 길을 나서는데 진순이도 눈치를 챘던 것 같았어요. 새집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발길을 돌려서 나오는데 계속 짖더라고요. 1년 후에 다시 찾아갔는데 그때도 나를 알아보더라고요. 보고 오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다시는 못 가고 있죠.


최동표 원장은 5년간 키우던 진돗개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개가 짖는다고 이웃집 사람들이 계속 민원을 넣고 항의를 해왔기 때문이죠.


최동표 : 그런데 주변에 개를 키우는 집이 우리 말고도 여럿 있고, 하다못해 저희를 신고한 이웃도 개를 키우고 있어요. 우리만 미운 거죠.


최동표 원장은 1998년 12월 이래로 정신장애 당사자를 위한 공동생활가정인 ‘한마음의 집’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이웃이 수없이 바뀌는 동안에도 ‘한마음의 집’과 최 원장은 이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잠시 머물고 간 사람들은 ‘한마음의 집’에 볼멘소리를 내며 살다가 ‘한마음의 집’을 탓하며 떠나곤 했습니다.


최동표 : 주민들이 ‘한마음의 집’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오가시라고 정문을 없애고 길가 쪽 벽을 모두 헐었어요. 그런데 이웃은 저희 회원들이 눈에 뜨이는 게 싫다면서 오히려 담을 높게 쌓더라고요. 다른 이웃은 ‘한마음의 집’ 안에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해서 저희 돈을 들여서 주변에 나무도 심었어요. 사소한 것도 저희가 하면 반드시 항의와 불만이 들어오니까 항상 조심하며 사는 거예요. 솔직히 불공평한 것들이 많지만, 최대한 이웃들과 잘 지내려고 합니다.




우리도 홍은동 주민이에요


‘한마음의 집’은 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최동표 : 회원들이 사회로 돌아가 평범하게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주민과 교류를 많이 해요. 물론 주민과 자꾸 교류하려는 건 정신장애인에 대한 시선을 바꾸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것도 크죠.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얘기하며 가까워져야 생각도 차츰 바뀔 수 있잖아요.


어느덧 홍은동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최동표 원장은 주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마음의 집’ 회원들과 주민들이 꾸준히 만나서 대화도 하고 함께 요리도 하고 노래자랑 대회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원들과 주민들 사이의 담을 낮추려고 합니다. 


최동표 : 이 동네가 산자락이라 계단이 많아요. 그중 가장 높고 긴 계단 몇 개를 저희 회원들이 그림을 그려서 꾸몄어요.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와서 ‘한마음의 집’ 담에 벽화도 그려주곤 했지만 마을을 위한 그림은 꼭 저희가 직접 그리고 싶었어요. 우리도 주민으로 인정해달라는 거죠.



꾸준한 제도 개선, 더딘 인식의 변화


최동표 원장이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최동표 : 제가 80~90년대에 병원이나 민간시설에서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많이 목격했어요. 시설이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도 비일비재했고, 하다못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 문을 잠가 걸어 잠그며 없는 사람 취급하고 감추려 했죠. 이런 끔찍한 환경에서 당사자를 지켜줄 수 있는 법도 미비했습니다. ‘한마음의 집’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런 환경을 직접 개선하기 위해서였죠.


불행 중 다행히, 큰 사건·사고를 거치며 조금씩 법과 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최동표 : 90년대 이후 꾸준히 개선되었어요. 정부나 시의 지원도 조금씩 늘어났고 시설도 바뀌고, 제도 등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많이 바뀌고 좋아졌죠.


그런데 지난 20여 년 동안 가장 잘 바뀌지 않는 것이 고집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최동표 :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속도는 그에 비해 너무 더뎌요. 국공립 지원은 넉넉하다곤 할 수 없지만, 계속 나아지고 있고 제가 노력하는 만큼 그 성과가 있어요.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잘 안되네요.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이어가며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매년 참여하는 주민이 점차 늘기도 했고 20년 넘게 마을과 ‘한마음의 집’을 지켜온 최동표 원장을 인정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동표 :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프로그램은 모두 중단되었어요. 주민과 함께 하는 것은 물론 회원들끼리 여행하고 캠핑도 가고 직업체험 했던 것들도 다 할 수 없게 되어버렸죠. 왠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정신건강 당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었던 최동표 원장은 매드프라이드로 찾아온 기회가 반가웠습니다.


최동표 : 코로나19 임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코로나19 세상이니까 매드프라이드 같은 자리가 더 늘어야 해요. 온라인으로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합니다.


매드프라이드 참여 외에 최동표 원장이 코로나19 시기에 키우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최동표 :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영화를 예전부터 만들어왔거든요.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하고 촬영하고 연출도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6년에 만든 <옆집>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메세나상을 받고 한국장애인영화제에서는 대상도 받았어요. 코로나19 시작되고 작년에는 극영화 <한 끗>을 제작했습니다.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하고 저희가 일일이 갈 수 없는 곳, 코로나19로 만날 수 없는 분들을 영화를 통해 만나고 우리의 얘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한마음의 집’과 이웃 사이의 담은 높고 견고합니다. 어지간한 세월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한마음의 집’의 당사자들과 최동표 원장이 지금과 같이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향기를 보내면 

언젠가는 향을 맡으러 와주겠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이 있는 한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 3회 매드프라이드가 온라인 가상 공간 게더타운에서 개최 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2021 매드프라이드 유니버스

일시 : 2021년 10월 10일

장소 : 매드프라이드 게더타운 


매드프라이드 공식 홈페이지 : https://ffa.co.kr/madprideseoul

안티카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ntica.mind

안티카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nticamind

유튜브 채널 ‘모두를 위한 자유’: https://www.youtube.com/c/모두를위한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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