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영향을 미친 그 감정
내 나이 열여섯,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M 채널의 음악방송을 보기 위해서, 독서실에서 문제집 한 단원을 스톱워치를 맞춰가며 말끔히 끝내고 뛰어갔다. 그리고 식탁 위에 앉아 나는 밥을 먹으며 그들의 무대를 봤고, 생방송이 끝났던 8시 30분 쯔음이 되면 다시 독서실로 향해 뛰어갔다. 학교가 끝나면 공부 - 덕질 - 공부 - 덕질의 유익한(?) 반복을 끊임없이 지속했던 내 10대의 일상이었다. 분명 중학교 3학년임이 틀림없는데 그때만큼의 내 눈빛은 대한민국 어느 수험생을 능가하는 공부에 불타 오르는 이글아이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 속에 담겼던 것은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독서실과 집을 반복하며, 틈틈이 '좋아함'의 감정을 느꼈던 아이돌 그룹이 그 눈빛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좋아하게 된 그때 좋아하게 된 그들은 내 평생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왔다. 아 그들을 내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곳은 '서울'인데 나는 서울말 한 마디도 못하고, 서울 지하철도 탈 줄 모르는 대구 사람인데.. 과연 어떻게 하면 좀 더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이 문화생활의 열정을 표출할 수 있을지라는 고민이 내 머릿속을 번져갔다. 그래서 내린 16세의 나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인 서울
엄마 아빠도 내가 공부해서 서울 가면 좋아할 테고, 나도 조금 더 편한 문화생활(?)이 가능해질 테니, 서로 윈윈 전략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단순한 논리. 서울에 가면 나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기 방청객들처럼 공방 뛸 수 있겠지 라는 순수했던 감정. 그리고 그 생활을 하루빨리 현실화해보자 라는 생각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생활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무조건 이득이라고, 행복할 것이라고만 마냥 생각했던 순수함은 내게 의자에 궁둥이를 더 오래 붙이게 하는 지구력을 길러주기 시작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열여섯 때 좋아했던 상대가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의 대표적인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그 상대로 인해 내게 서울에 대한 환상은 밑도 끝도 없이 커져갔고, 인 서울 라이프에 대한 꿈은 목표가 되어버렸으니. 그리고 그건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와버렸다. 또래에 비해 그 꿈이 재빠르게 현실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예상도 못한 찰나에, 어느 틈에 그 꿈은 이뤄져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90년대생의 또래보다도 빠르게 집을 나온 나의 '서울 유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때 내가 그 감정을 깨닫지 않았더라면, 과연 나는 '서울 유학'의 삶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행복과 환상을 꿈꾸며 시작했던 '서울 유학'의 삶은 매번 행복하지만은 않았는데. 상상과는 매우 달랐는데, 그때의 그 감정은 내게 엄청난 의미 있었던 감정이었음을 요즘 들어 부쩍 깨닫고 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16세의 내 머릿속에 그렸던 '인 서울'과 긴 시간 겪어온 '인 서울'과의 격차를 공유해볼 타이밍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