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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29. 2024

콘텐츠 가드닝, 뿌리를 내리는 시간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하여


최근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자 꾸준히 여기저기에 글을 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의 모닝페이지는 물론이고, 매일매일의 노트에, 블로그에, 그리고 이곳 브런치에.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자 했던 근본적인 목적은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자 함이 컸고, 구체적으로는 내 일과 관련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저의 글과 디자인도,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며 나는 ‘작가소개’ 란을 이렇게 채웠다. 처음으로 글과 디자인을 결합한 ‘책’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던 이유였고, 앞으로 하게 될 —그러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의 글과 디자인, 혹은 다른 그 어떤 것이든, 내 손에서 나온 것이 누군가에게 단 하나의 영감이라도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소개 문장을 만들었을 당시, 나는 ‘콘텐츠’라는 걸 처음 만들었다. 오롯이 내 손에서 나올 수 있는 소스로 ‘책’이라는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스는 ‘여행 글’이었고 ‘여행 사진’이었다. 거기에 직접 디자인을 하고, 본문 속 별면을 위한 지도까지 하나하나 그려가며 만들었다. 스톡이미지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지도 일러스트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온 책은 결과와 상관없이 나에게 가장 애착이 많은 디자인이자 콘텐츠가 되었다. 비록 여행 에세이로써의 완성도는 타 에세이보다 낮을지언정,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고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험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마음과 달리, 나는 첫 콘텐츠를 열심히 노력해 가며 자식 낳듯 낳아놓고 홀연 듯이 사라졌다. 내가 만든 콘텐츠로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기회들이 닿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질 못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막상 콘텐츠라고 만들어놓고서는,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굴레에 빠져 부끄러운 나머지 그저 숨기 바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에만 온전히 몰두했을 뿐, ‘생산 이후’를 잘 살피지 못했다. 계속해서 살피고, 땅도 솎아내고 했어야 했는데. 잠깐 맺히려나 싶었던 열매는 끝내 영글게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잘 보살피지 못한 땅은 한참 동안 메말라 있었다.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자꾸만 예전 작업이 생각났다.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나의 이야기, 내가 디자인한 나의 책. 지금에야 ‘그게 내 콘텐츠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거지, 그때만 해도 나는 ‘디자인 포트폴리오’로써의 역할로만 책을 바라봤을 뿐, 땅 속 기반을 탄탄히 받쳐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은 부족했을지언정 처음 만든 콘텐츠가 나를 지탱해 주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콘텐츠는 창작자가 삶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비로소 나왔다. 걸려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와 거절, 좌절과 낙담은 콘텐츠로 승화될 수 있다. (…) 우리의 ‘특별하지 않은 삶’도 콘텐츠의 질료가 될 수 있다.


생명을 다한 것들이 남기고 간 것 중 극소량은 ‘부엽토’가 되어 새 생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가드닝에서의 최고의 비료인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계속해서 지난 작업(책)을 떠올렸던 이유는 뭐였을까. 그게 다시금 내게 새 생명을 촉진하는 역할인 부엽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던 중에 만난 책 속 문장. 거기에 늘 마음속에 있는 지난 작업을 교차해서 떠올려보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비록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크게 내세울 것 없다고 생각한 지난 나의 작업들에서도 분명 나만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경험은 있지만 그것이 실패라고 여겼던 지난날의 기억도 콘텐츠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글쓰기에 있어서, 그리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힘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이야기도 부엽토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을 가지고 섣불리 열매부터 맺으려 서두르고 조급해하는 게 아니라,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가는 것.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나는 지금 나는 뿌리를 내리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렇게 기르는 힘을 길러두면 나중에 예기치 못한 씨앗이 찾아왔을 때 싹을 틔울 수 있다. 초심자가 보잘것없는 씨앗을 갖고서라도 가드닝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한 이유다.


기르는 힘이 없이는 당연히 열매(콘텐츠)도 없다. 내게 기르는 힘이 없었다면, 아마 책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가드너로서 다시금 기르는 힘을 찾아가려고 하는 중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건, 비록 한번뿐이지만 경험이 있다는 것. 가드너는 어떤 씨앗이라도 싹 틔워 기를 수 있는 사람이다. 가드너는 새싹이 잘 자라나기를 주목하는 사람이지, 지난 식물을 내가 왜 죽였을까 하고 그 앞에서 자꾸만 자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자책은 그만하고, 씨앗을 잘 심을 수 있도록 토양을 잘 다져야 한다. 내게 당장 특별한 콘텐츠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르는 힘을 계속해서 길러내다 보면, 언젠가 또 다른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콘텐츠 가드닝>, 그리고 6살짜리 우리집 식물, 필레아페페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디자이너.
어떤 형태의 콘텐츠가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날을
오늘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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